월간지를 발간하자는 생각은 K. J. 다스투르에게서 나왔고, 바바는 그 계획을 추진하라고 격려했다. 11월 22일 바바는 그 월간지의 이름을 『메헤르 메시지』로 정했고, 우르두어, 마라티어, 구자라티어, 페르시아어 저널 발간 가능성도 시사했다. 바바는 다스투르, 람주, 찬지를 불러 제안된 출판물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게 했다. 그 제안과 정기간행물 기사 심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안까지 듣자 다스투르는 화가 나서 성을 냈다. 그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임명된 『메헤르 메시지』 외에는 다른 출판물이 유통되기를 원치 않았다.
바바는 다스투르가 편집한 잡지의 권두 기사에 몇 가지 불일치가 있음을 지적했다. 다스투르는 찬지와 람주를 가리키며 바바가 늘 그들의 말대로 한다고 주장했다.
바바는 되받아 말했다. "정말 내가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네가 나와 함께 있을 이유는 없다."
논의가 끝난 뒤 다스투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바바는 람주와 찬지에게 말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둬라. 내가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 문제 될 내용은 출판되게 두지 않겠다."
그 전 몇 달 동안 람주는 『흐느낌과 고동(Sobs and Throbs)』이라는 책을 위해 학생들의 영적 체험과 학교 아쉬람의 사건들을 인터뷰하느라 바빴다. 원고 타이핑은 아가 알리가 아버지와 그 경호원에게 끌려가 아쉬람을 떠난 날 시작되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프렘 아쉬람 소년들 가운데 일부는 심한 기침을 앓고 있었다. 24일 바바는 바이둘에게 약국에서 기침 시럽 몇 병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모양이 똑같았기 때문에 실수로 요오드 한 병이 기침약 병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병들은 모두 바바에게 건네졌다. 바바는 약을 나눠 주는 대신 병 하나를 한동안 손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더니 바이둘에게 돌려주며 그것이 요오드라고 말했다. 바바는 몹시 화가 났다.
"이걸 소년들에게 먹였더라면," 바바가 말했다.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
바이둘은 자기 실수에 대해 거듭 사과했고, 바바는 그를 용서했다.
그 무렵 만달리 가운데 아픈 사람들로는 파드리와 메헤르지가 있었다. 11월 25일 메헤르지는 너무 아파서 식사를 중단했다. 그는 앓는 동안 즙이 많은 카불리 석류나 오렌지, 사과를 몰래 먹고 싶어 했지만 그 바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