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바가 카불리 석류를 포함한 과일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그의 방에 찾아오자, 그에게는 반가운 놀라움이었다.
토카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여러 지역의 스승 헌신자들은 메헤르 아쉬람이라는 독특한 기관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자녀를 입학시키라고 권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학교가 문을 닫고 토카의 건물들이 철거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겉보기엔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의 진짜 일은 바바만 알고 있었고 실제로는 모든 것이 그의 신성한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928년 11월 26일 월요일, 바바는 구스타지와 초타 바바를 데리고 루스톰의 차로 토카를 떠났다. 남아 있던 소년들과 감독자들은 트렁크와 짐을 싣고 손수레로 뒤따랐고, 모두 아흐메드나가르 악바르 프레스의 사타 가문 집에 머물렀다.
누세르완은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차파티 준비를 도왔다. 바바도 부엌에 들어와 그 일을 거들었다.
누세르완이 그를 만류하려 하자 바바는 설명했다. "나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밤낮으로 해야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온 세상이 굶게 된다! 나는 내면에서 모두를 먹이지만, 외적으로 모두를 먹이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왔다."
11월 29일 바바는 아디 시니어의 차를 타고 토카로 돌아왔다. 잠시 머문 뒤 그는 오후 2시에 여성 만달리와 함께 메헤라바드로 떠났다. 그곳에서 여성들은 우체국 건물에 머물렀고, 바바는 물탱크 남쪽에 있는 부아사헵의 옛 방, 즉 언덕 위 거처에서 다시 지냈다. 그날 만달리 몇 명과 소년들은 메헤라바드까지 걸어가 저녁에 도착했다. 소년들은 물탱크 건물의 홀들에 수용되었다.
야간 경비원 자마다르는 바바가 토카에 6개월 머무는 동안 언덕에 남아 재산을 지켰다. 자마다르는 매우 성실해서 몸이 불편한 때조차도 자기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마다르의 아내 바구 역시 근면하고 정직하며 성실한 여성이어서, 여성 만달리를 돕도록 임명되었다.
바바는 11월 26일 나오로지 다다찬지를 토카로 불러 임시 건축물 철거 작업을 감독하게 했다. 해체된 자재들은 메헤라바드로 다시 실어 보냈다. 12월 4일까지 작업이 끝나자 남아 있던 남성 만달리는 토카에 작별을 고하고 임대한 손수레를 타고 메헤라바드로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