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페르시아 데르비쉬의 모습이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항상 긴 흰색 예복을 입었다.
가게 주인은 정반대였다. 셰리아르의 경건함을 멸시하고, 아주 사소한 구실만 있어도 그를 꾸짖는 물질주의자였다. 셰리아르는 빛을 찾아 인도에 왔지만, 지금까지 그가 발견한 것은 어둠뿐이었다. 주인이 마침내 그를 부정직하다고 몰아세우자, 셰리아르는 그런 부당한 비난의 표적이 되느니 차라리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다섯 달 만에 그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임금을 받았지만 오직 2루피만 남기고, 나머지는 나눠주었다.
어쩌다 그에게 떠맡겨진 이 일은 셰리아르에게 운명이 잠시 허락한 숨 고르기였던 것 처럼 보였다. (비록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셰리아르는 이란에서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10년을 더 인도 전역을 떠돌게 될 운명이었다. 남겨 둔 2루피로, 셰리아르는 나무 그릇과 지팡이를 장만했다. 더는 돈이 없었기에 그는 북쪽으로 1,000마일이 넘게 떨어진 카라치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는 구자라트와 쿠치를 떠돌며 수라트, 와드완, 만드비를 지나갔다. 오랜 날들을 걷는 동안 그의 발에는 심한 물집이 잡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밤에는 나무 아래에서 몸을 의탁했고, 낮에는 "예즈단"을 되뇌며 계속 걸었다. 음식을 보시받으면 먹었고, 받지 못하면 금식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다.
셰리아르는 여정 중에 많은 사두와 요기, 참회하는 고행자들을 만났고, 순례지들에서 몸을 의탁하곤 했다. 네 달에 걸친 혹독한 여정 끝에, 그는 쇠약하고 수척해진 몸으로 마침내 카라치에 도착했다. 그가 왜 그 도시까지 걸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아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한 달 머물며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뒤, 그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셰리아르는 작열하는 신드 사막을 목적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발에는 다시 물집이 잡히고 살갗이 벗겨졌으며, 혀는 갈증으로 부어올랐다. 이글거리는 모래 위에 몸을 눕혀 봐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위안이 될 리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너무 쇠약해져서 매 걸음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예즈단!" 하고 외치며 그는 기절했다. 사막의 그 일대에는 물도 피난처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