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들은 그의 말을 믿고 말을 돌려 떠났고, 셰리아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실제로 그날 개 한 마리도 그곳을 지나간 적이 없었고, 소녀가 그곳에서 달아난 것도 아니었으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셰리아르는 빵집으로 돌아가 그 젊은 여자를 안전하게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그곳에서 그녀의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받았다.1
셰리아르의 영적 성향은 일찌감치 꽃피었고, 그는 아버지와 함께 그 모하메드교 왈리를 만났음이 틀림없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삶을 초연하게 바라보았고 물질적인 야망이 전혀 없었으며, 이 세상에서 잘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침묵의 탑에 사람의 시신이 도착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행복한 자도 비참한 자도 죽는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누구나 기쁨과 슬픔을 남겨 둔 채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왜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는가? 하지만 어떻게?"
셰리아르의 가슴은 그를 만족시킬 답을 찾느라 안달이 났다. 1865년 어느 날, 셰리아르는 자신의 갈망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았고 가족에게 작별을 고한 뒤 집을 떠났다. 그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소년은 고향 코람샤를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고, 오늘날의 이란 전역을 떠돌기 시작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는 옷가지 몇 벌만 가지고 다녔고, 밤에는 아무 데서나 쉬며 구걸한 음식으로 연명했다. 이 젊은 데르비쉬(dervish,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을 버린 금욕주의자)는 하나님께 확고하고 완전한 신뢰를 가졌다. 그는 오직 그분의 도움에만 의지했다.2 그에게 무슨 다른 도움이 더 필요했겠는가? 그는 하나님을 찾는 일에 자신을 바쳤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분의 이름인 "예즈단, 예즈단, 예즈단!"을 되뇌며 그분을 찾았다.
셰리아르는 방랑하는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을 운명이었으나, 용기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기에, 그는 고통을 통해 내면의 힘을 얻었다. 페르시아에서 데르비쉬들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 소년은 음식 대신 모욕을 받았고, 때로는 피난처 대신 매를 맞았다. 그러나 세상을 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것이 되며, 이것이 셰리아르의 운명이었다.
어느 날 소년의 방랑은 그를 바프테 바드니안 마을로 데려왔다. 지치고 배고팠던 셰리아르는 저녁거리로 빵 한 덩이를 구걸하러 빵집으로 다가갔다.
각주
- 1.그 지역의 더 잔인하고 무자비한 무슬림들은 조로아스터교 가정에 침입하여 가족의 소녀들을 납치한 뒤, 다른 지역의 무슬림에게 시집보내거나 첩으로 팔기도 했다. 소녀들은 종종 아라비아로 보내졌다. 이런 식으로 무슬림 광신자들은 조로아스터교 인구를 줄여 나갔다. 셰리아르에게 다가온 소녀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뻔했다. 무슬림들이 그녀의 집에 침입했으나, 그녀는 뒷방에 있어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녀는 침묵의 탑이 있는 외곽 숲을 향해 달렸고, 그곳에서 셰리아르가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 2.수피즘에서 데르비쉬(dervish)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을 버리고 금욕주의자가 된 사람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