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아르의 아버지 문데가르는 대부분의 조로아스터교도들처럼 가난한 사람이었다. 불신자로 여겨지던 조로아스터교인들이 어떻게 이 종교적 분쟁의 땅에서 번영할 수 있었겠는가? 모두가 농사와 원예에 종사했지만, 문데가르의 직업은 마을 침묵의 탑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침묵의 탑은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죽은 이의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어주기 위해 데려오는 곳이었다.1 보수가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문데가르는 두 아들과 딸 하나로 이루어진 가족을 부양해 나갔다. 셰리아르의 어머니는 그가 겨우 다섯 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문데가르는 두말할 나위 없이 깊은 슬픔에 빠졌다. 문데가르는 자기 신앙의 교리를 실천하긴 했지만, 정통파 조로아스터교도는 아니었으며 광신자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종교적 정서를 지니고 있었고, 모든 사람에게서 신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모하메드교와 조로아스터교 축제 모두에 참여하곤했다. 그는 사교적인 성품이어서 두 공동체 사람들과 모두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슬림 이웃들에게 다소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는데, 코람샤의 모하메드교 성자 — 왈리 알라(wali-Allah, 하나님의 벗) — 를 독실히 따르며 자주 그 성자를 찾아갔기 때문이다.2 하지만 이 모하메드교 성자에 대한 헌신 덕분에, 문데가르와 그의 자녀들은 조로아스터교 공동체 대다수가 겪었던 더 잔혹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문데가르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무슬림들로부터 받는 박해를 영적 자기 소멸의 수단으로 여겼다. 가난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억했고, 이 때문에 많은 부유한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복이 많다고 생각했다.
셰리아르의 어머니가 죽은 뒤, 셰리아르는 형 코다다드와 누나 피로자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셰리아르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매일 아버지를 따라 침묵의 탑에 가서 혼자 놀곤 했다. 어린 소년은 사색적인 성품이었고, 그곳에서 기도하고 명상하곤 했다.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부자 집 아이들만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가난한 조로아스터교도에게는 학교에 입학할 기회조차 없었다.3 밤마다 홀로 시신을 지키는 외로운 밤샘 속에서, 문데가르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했지만, 어린 아들이 곁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셰리아르의 천진한 재잘거림은 상심한 아버지를 즐겁게 했고, 문데가르는 종종 아들이 타고난 지혜를 지녔다는 것과 그 대화 속에 담긴 사려 깊음에 탄복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