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더러운 오두막에 눕기도 하고, 질그릇 하나를 들고 음식을 구걸하곤 했다. 그는 같은 그릇에 대변을 본 뒤 그것을 씻어, 그 그릇으로 구걸한 음식을 먹곤 했다. 그러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이 벌거벗은 사두(sadhu, 세속을 버리고 영적 수행에 전념하는 힌두교 성자 혹은 고행자)는 누구의 내면적 영적 갈증이든 풀어 줄 신성한 술을 품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스승이었기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의 신성한 아름다움에 이끌렸다.
친나 스와미의 집에 머문 뒤, 1915년 2월에 우파스니는 남데오 마하르라는 가난한 하층 카스트 남자와 그의 아내 바구가 사는 소박한 거처로 옮겼다. 거기서 우파스니는 그들의 소박한 단칸집에 딸린 외양간에서 머물렀다. 그 부부는 우파스니를 깊이 사랑했으며, 자신들은 가장 낮은 카스트인 하리잔(Harijans, 불가촉천민)에 속했지만 정통 고위 카스트 브라만들까지 마하라지의 다르샨을 받기 위해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이 일은 우파스니의 신성한 인격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그 힘은 편견에 물든 브라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종교적 훈련에서 비롯된 엄격한 규범마저 저버리게 만들었다. 당시에 브라만이 불가촉천민의 집에 발을 들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가난한 하리잔 거주지에서 마을의 부유한 사람들이 우파스니 앞에 오면, 그는 남데오의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 가운데 하나를 그들 앞에 놓고 말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니 이것을 경배하라!"
한번은 우파스니가 대장장이의 일을 거들고 있을 때, 몇몇 부유한 방문객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러 찾아왔다. 우파스니는 그들 앞에 망치를 놓고 말했다. "이것에 절하라.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대로 했고, 그는 기뻐했다.
또 한 번은 우파스니가 닳은 신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한 여인에게 말했다. "이 신발에 아르티를 행하라.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했을 뿐 아니라, 집에서 예배하려고 그 신발을 사드구루의 프라사드(prasad, 신의 은총이 담긴 성스러운 선물)로 받아 가져갔다.
이 시기 카라그푸르에 있는 우파스니는 사드구루였지만, 겉으로는 브라흐미-부트(Brahmi-bhoot, 하나님을 실현했으나 세상 의식을 잃고 하나님께 완전히 흡수된 영혼)와 비슷해 보였다. 그는 멍한 듯 보였고, 육체적으로는 물질 의식의 징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한번은 마을의 앵글로-인디언 소년들이 멍한 상태의 그를 발견하고 그의 목에 낡은 신발로 만든 화환을 걸었다. 그를 그저 미치광이로 여긴 그들은, 심지어 개 배설물을 그의 입에 넣어 모욕하려 하기까지 했다 우파스니는 며칠 동안 낡은 신발 화환을 목에 건 채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벗기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마침내 어른들 몇 사람이 그것을 벗기고 신발 대신 꽃화환을 걸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