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신자 라야 마로티 사카레(아만답왈라, 차양막 설치업자)가 26일 오후 4시 메헤라바드 주민 모두를 위한 특별 잔치를 열었다. 모두 사이 다르바르에 모였고 차가 나왔으며, 바바는 세브와 부지아, 잘레비를 나누어 주었다. 그에 앞서 바바는 성냥을 켜 침 뱉는 통에 던졌다.
7월 27일 저녁 스승의 담화는 마야와 관련된 사드구루의 영적 의무에 관한 것이었다:
사드구루는 신실현 후 우주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만 다시 돌아온다. 그는 마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이 일은 마야와 관련된다. 그는 다른 이들을 자신과 같이 만들기 위해 마야 안에서 일해야 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마야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차를 마실 때는 컵과 받침을 쓴다. 하지만 차를 다 마시면 컵과 받침을 치워 둔다. 무엇을 하거나 체험하려면 일정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이 끝나면 그 수단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이와 똑같이, 완전성 달성과 신실현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 여겨지는 인간의 몸도, 그 실현과 달성 후에는 전혀 필요 없으므로 버려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현자들, 즉 사드구루와 아바타, 차지맨은 다른 이들을 자기들처럼 완전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만 그 의무를 위해 인간 형태를 취한다. 그 의무가 끝나는 즉시 그들은 몸을 내려놓는다.
1926년 8월 5일 목요일, 스승은 아흐메드나가르 신자 누세르완 사타와 비얀카테쉬 스리다르 "카카" 친초르카르와의 대화에서 욕망, 그리고 영적 독립과 정치적 독립의 차이를 설명했다. 바바는 끝에 이렇게 강조했다:
참된 박티[헌신]란 "하루에 천 번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인이 말했다. "화살의 상처를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런 위험한 놀이에 뛰어들고 그 고난을 견디며 그 고통을 감당할 만큼 담대한 마음을 만들어라."
이 구절은 "마음을 만들라"는 문자적 뜻만이 아니라, 상처의 고통을 남이 모르게, 불평 한마디나 아픔의 기색조차 없이 조용히 견뎌야 한다는 내적 뜻도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