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침묵의 시작
1926년· 바바 32세페이지 641 / 5,444
만약 여러분이 나를 이 짙은 무지의 동참자로 만들고 싶다면, 그 생각은 접으십시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것은 참된 생명(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을 향해 나아가는 필수적인 한 걸음입니다. 영혼은 단지 새로운 거처로 옮겨 갈 뿐이며, 죽음은 외투를 갈아입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잠쉐드는 이 세상에서 그 옷을 입고 삶을 겪은 뒤, 이제 그것을 갈아입은 것입니다. 이는 배우가 여러 극에서 다른 배역을 맡거나, 같은 연극에서도 막 뒤에서 의상을 바꿔 다른 차림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잠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과 잠의 차이는, 죽음 뒤에는 새로운 몸에서 깨어나지만 잠에서는 같은 몸을 다시 자각한다는 점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밤에 누군가가 잠들어도 히스테리를 일으키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가 다시 살아 깨어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조만간 새 몸에서 다시 살아 깨어날 것이 분명한데, 왜 죽음의 잠에 대해서는 같은 담담함을 보이지 못합니까?
그대들은 때때로 기차를 타고 여행하고, 다른 승객들은 아무 근심 없이 로나블라, 칼리안, 다다르 같은 각자의 역에서 표에 따라 내립니다. 잠쉐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여행 중이었고, 표에 적힌 목적지에 이르자 기차에서 내린 것[몸을 떠난 것]입니다. 그의 역은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기차는 밤낮없이 달리고 무수한 승객들이 표에 따라 각기 다른 역에서 내립니다. 그 모든 사람을 다 붙잡고 얼마나 울 셈입니까?
대부분이 담담하지 못한 까닭은, 결함 있는 필멸의 눈으로는 소위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랑하는 이나 벗의 기(氣)적 형체를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영적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들을 울고 통곡하게 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는 이기심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방에서 곡성이 터집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어머니)가 죽었어!... 내 삶의 근원이 사라졌어... 내 눈의 빛이 꺼졌어!... 내 사랑은 어디 있나?... 내 버팀목이 사라졌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