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메헤라바드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깊이 감동받아 바바의 활동을 지원하겠다며 재정적 도움을 제안했다.
바바는 그의 제안을 사양하며 석판에 썼다. "나는 파키르다. 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우리에겐 하나님이면 충분하다!"
바바는 그에게서 어떠한 기부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힌두교 축일마다 아르준은 바바의 목욕 일정을 잡았고, 수백 명이 차례로 따뜻한 물 한 단지씩 바바의 몸에 경건히 부어 그 행사를 성스럽게 했다. 10월 31일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고, 아르준은 바바를 위한 의식 목욕을 준비했다. 바바는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그것을 견뎠다.
그러나 끝난 뒤 바바는 아르준에게 경고했다. "나에게 이 목욕 의식을 거듭 시키지 마라. 지난번 목욕 뒤로 기침과 감기가 계속되고 있다."
루스톰과 프레이니, 그리고 두 아이는 루스톰의 부모와 함께 쿠쉬루 쿼터스에서 살다가 가족 쿼터스의 수리된 구역으로 옮겼다. 11월 8일 일요일, 바바와 만달리는 그곳의 집들이에 갔다.
몬순 철이었지만 그때까지 비가 심하게 부족했다. 1925년 11월 초, 식수 부족과 장기 가뭄으로 라비(가을) 작물 실패 위험이 커지자 인근 마을 사람들이 바바를 찾아와 비를 청했다. 바바는 그들에게 조금 더 참고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11월 10일 밤, 고된 하루를 보낸 바바가 테이블 캐빈 근처에서 만달리와 이야기하던 중 마을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또 비를 간청했고,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아르티가 끝나자 바바는 구덩이를 파고 두니(성화)를 피우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 11시에 불을 피웠다.
그 뒤 바바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너희 기도를 들으셨다. 이제 곧장 집으로 돌아가라."
두니를 피우기 전까지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지만, 한 시간 뒤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15시간이나 이어졌고, 마을 사람들의 작물은 살아났다.
다음 날 바바는 만달리 각자에게 두니에 관한 시를 짓게 했다. 그날 오후 학교는 수업을 쉬고, 모두의 시를 소리 내어 낭독했다. 루스톰이 1등, 파드리가 2등, 학교 교사 판도바가 3등, 역시 교사인 키산 마스터가 4등을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