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바바는 푸나 출신 하층 카스트 청소부 바하두르를 매우 사랑했는데, 한때 그에게 인분을 몸에 바르라고 명한 적도 있었다. 1922년 푸나 오두막 시절 바하두르는 가잘과 바잔을 지어 바바에게 불렀고, 메헤라바드를 찾아왔을 때도 스승 앞에서 계속 노래했다.
바바는 그를 향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곁에 앉힌 뒤 "새로 지은 곡이 있느냐? 내게 불러 보아라, 어서!"라고 물었고, 바하두르는 아주 기쁘게 최신 곡을 불렀다.
1925년 10월 22일 밤늦게, 구스타지가 위험 신호로 호루라기를 불었다. 남자들은 즉시 손에 막대기를 들고 숙소에서 뛰어나왔다. 무슨 일인지 묻자 구스타지가 말했다. "큰일은 아닙니다. 여자가 자는데 쥐 한 마리가 몸 위를 지나가서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듣고 제가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순식간에 심각한 분위기가 농담으로 바뀌어 모두가 웃었다.
이 시기에는 밤마다 다른 남자들이 번갈아 보초를 섰고, 메헤라바드에 머물던 굴라브샤가 그 책임을 맡았다. 차간이 이를 도왔다. 한번은 차간이 밤 근무 중에 잠이 들었고, 굴라브샤는 몹시 화가 났다. 굴라브샤는 비꼬듯 말했다. "졸리면 눈에 고춧가루라도 넣지 그래?" 차간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다음 날 밤 잠들지 않으려고 눈에 고춧가루를 조금 뿌렸다가 곧 통증으로 크게 울부짖었다. 차간의 고통 소리를 듣고 바바가 직접 찬물로 눈을 씻겨 주었지만, 따가움과 부기는 며칠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6일 금식 뒤 바바는 때때로 아주 소량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다른 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아조바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바바는 여느 때처럼 상쾌하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침에는 바바가 테이블 캐빈 안에서 책 집필에 몰두하느라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밤에 모두 잠들면, 그는 작은 휴대용 책상 위에 등유 랜턴을 놓고 하즈랏 바바잔 학교 베란다에서 계속 글을 썼다.1 한밤중 소변 보러 일어난 만달리들은, 바바가 학교 옆에 홀로 앉아 그 일에 몰두한 모습을 보곤 했다.
이 무렵 한 신문 발행인과 그의 부유한 친구가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러 왔다.
각주
- 1.메헤르 바바가 자신의 저서 일부를 집필한 책상은 현재 어퍼 메헤라바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