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샤하네 집에서 차를 마시던 중 바바가 말했다. "파키르를 집에 부르기 전엔 두 번 생각해야 한다. 완전한 파키르[완전한 스승]는 결코 추종자를 해치지 않지만, 진보한 영혼을 만족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파키르를 초대했다면 그에게 아무것도 거절해선 안 된다. 그러니 차라리 그를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 그가 있는 자리에 머물게 하라."
이 점을 설명하려고 바바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자기 집에 파키르와 더불어 수백 명의 손님을 초대했다. 그런데 파키르가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와서 식사를 요구했다. 음식을 내주었지만 그는 계속 더 달라고 했고, 곧 모든 그릇이 비었다. 집주인은 성자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어 그 파키르를 부른 것이 실수였음을 알았지만, 더 주지 않는 것은 더 큰 실수임도 알았다. 그래서 다른 500명의 손님을 위해 준비한 음식까지 파키르에게 내주었다. 마침내 파키르는 만족해 떠났고, 집주인의 그 행위를 축복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런 인물을 집으로 불러 저주받을 위험까지 감수한 일을 후회했다."
바바는 잠쉐드와 몇 사람을 데리고 저녁 열차로 푸나에 갔다.
루이스 넬름스라는 영국인은 1923년 12월 푸나에서 바바를 만난 뒤 그의 아쉬람에 머물고 싶다고 청한 바 있었다. 바바는 적절한 때가 되면 부르겠다고 말해 두었다. 1925년 6월 19일 금요일 푸나에서 바바가 다르샨을 열었고, 넬름스가 다시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넬름스는 함께 지내고 싶다는 뜻을 재차 밝혔고, 이번에는 바바가 허락했다. 바바와 남자들은 그날 밤 늦게 메헤라바드로 돌아왔고, 넬름스는 다음 날 아침 도착했다. 그는 바바 만달리에 합류한 첫 기독교인이자 첫 서양인이었다.
넬름스(29)는 봄베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품위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인 경찰 감찰관이었고, 봄베이에서 영국인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부부에게는 다섯 자녀가 있었다. 루이스가 막내였다. 넬름스는 1919년 봄베이에서 엘런 놀란과 결혼할 당시 봄베이 상공회의소에서 계량 업무를 맡아 일하고 있었다.1 그들은 바이쿨라에 살며 두 자녀를 두었다. 넬름스는 유난히 성품이 온화했고 영성에 대한 사랑도 깊었다. 젊은 시절 그는 바바를 보거나 이름을 듣기 전, 대성당에서 한 번 스승의 모습을 환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각주
- 1.검량사(measurer)는 세관 업무를 위해 화물의 중량과 치수를 확인하는 관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