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자비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아랑가온의 한 과부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마을 탈라티(행정 회계 담당)와 불화를 겪었고, 결국亡夫 농지의 미납 세금을 둘러싼 소송으로 번졌다. 바바가 개입해 탈라티에게 50루피를 지불했고, 과부에게는 소송비로 들어간 15루피를 따로 내주었다. 이 뜻밖의 사랑 어린 행위로 여인의 마음은 바바를 주님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녀의 눈물은 평생 잊지 못할 깊은 감사의 표현이었다.
또 다른 사례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 이야기다. 몇 해 전인 1922년, 바바가 푸나 퍼거슨 로드의 초가집에 머물 때 굴마이는 아흐메드나가르의 칸호바 라오 가데카르가 만든 샌들 한 켤레를 바바에게 선물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로 바바는 겉보기엔 평범한 그 가죽 샌들을 유난히 소중히 다뤘고, 만달리는 왜 바바가 늘 그것만 신는지 의아해했다. 인도 전역을 처음 여행하던 때에도 그는 다른 샌들을 신지 않았다.
메헤르 바바가 그 찹팔 한 켤레를 아낀 데에는 영적 신비가 깔려 있었다. 그 구두 수선공의 스물한 살 아들 람찬드라는 1925년 4월 29일 다르샨을 받으러 메헤라바드에 왔다. 그는 푸나 퍼거슨 칼리지 학생이었다. 바바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메헤라바드에 머물라고 권했다. 또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금도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람찬드라는 오랫동안 어떤 약으로도 낫지 않는 심한 복통을 앓고 있었다. 그는 메헤르 바바께 경의를 표하고, 오랜 병에 대해 상의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가 절하자 스승이 물었다. "무엇을 원하느냐? 왜 정말로 나를 보러 왔느냐?"
그 순간 람찬드라는 신성한 열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병고를 잊었다. 그는 즉시 답했다. "바바, 저는 하느님 실현을 원합니다!"
이를 들은 바바는 미소 지으며 그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했다. 이후 바바는 그의 건강 상태를 묻고 특정 치료를 권했다.
몇 달 뒤 위장 질환은 사라졌고 람찬드라는 하즈랏 바바잔 학교 교사가 되었다. 나중에는 가데카르 가족 전체가 메헤라바드로 옮겨와 메스 쿼터스 뒤쪽의 작은 흙방 하나에서 살았다. 아버지 칸호바도 그 특별한 샌들을 손질해 주며 스승을 섬겼다.
람찬드라 가데카르를 통해 낮은 구두 수선공 카스트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메헤르 바바와 연결되었다. 람찬드라는 훗날 어디를 가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스승의 사랑과 진리의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