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톰이 확인해 보니 그 개는 달아났고, 추가 피해자는 없었다. 바바는 피라지를 다정히 위로했고, 다음 날 그를 아흐메드나가르 시립병원으로 옮기게 했다. 바바는 피라지 치료를 위한 모든 준비를 해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잘 치료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얼마 후 피라지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 마을로 돌아갔다. 이런 따뜻한 일들을 통해 순박한 농민 마을 사람들은 스승이 자신들을 돌봐준다는 확신 속에 메헤르 바바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병원 초기에는 카르칼 박사가 스승이 환자별로 제시하는 약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스승이 특정 병에 대해 특이한 약을 권하곤 해서, 그는 그 처방이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때때로 카르칼 박사는 짜증이 나서 "여기 의사가 메헤르 바바인가, 나인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스승의 방식대로 치료받은 환자들이 모두 회복되는 것을 보고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 카르칼은 그 회복이 오로지 메헤르 바바의 축복 덕분이라는 확신을 점차 갖게 되었다. 그 뒤로 중증 환자의 경우 카르칼은 어떤 치료를 해야 할지 스승에게 주저 없이 자문했다. 위중한 환자가 살아나면 특별한 축하를 열었고, 바바는 카르칼과 파드리, 펜두를 칭찬했다.
1925년 4월 14일 바바는 아이들 교복용 카키 천을 사기 위해 봄베이로 떠났다. 나흘 뒤 돌아오자마자 그는 곧바로 병원에 가서 환자와 직원 모두에게 말을 걸었다. 병원 운영 전반을 꼼꼼히 점검한 뒤 학교로 가서 아이들의 건강, 식사, 학습 상태를 물었다. 이어 자신이 없는 동안 생긴 문제가 있는지 만달리와 상의했다. 이 모든 일을 챙긴 뒤에야 바바는 고된 여정 끝에 비로소 쉬었다. 이처럼 스승은 메헤라바드 생활의 세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고, 어떤 일꾼의 작은 게으름이나 부주의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들 교복 재봉을 위해 와만 다니라는 지역 재단사가 고용되었다. 바바는 재단사가 자기 앞에서 천을 재단하게 하며, 일이 제대로 되는지 직접 확인했다.
메헤라바드로 서둘러 돌아오느라 바바는 봄베이에서 문시지를 만나지 못했다. 문시지는 바바가 봄베이에 왔다가 자신을 보지 않고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단식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