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925년에는 아흐메드나가르 주민이자 아랑가온 근처 토지 소유자인 존경받는 브라만 원로, 드냐네슈와르 람찬드라 샤하네가 바바의 다르샨을 위해 메헤라바드를 자주 찾았다. 그의 아들 모한은 가능한 최선의 치료를 받았는데도 낫지 않는 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샤하네가 아들 병세를 두고 스승에게 간청하자, 바바는 아들을 메헤라바드에 두면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모한은 점차 건강을 되찾았다. 얼마 뒤 카카 샤하네라 불리던 그는 가족 전체를 이끌고 메헤라바드로 옮겨 왔고, 모두 바바의 지시에 따라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을 근처 땅에 바바가 임대한 방갈로, 즉 패밀리 쿼터스에 머물렀다. 샤하네는 스승에게 완전히 헌신하게 되었고, 평생 바바의 인도에 자신을 맡겼다. 샤하네와 아내 마누타이에게는 딸 넷과 아들 셋이 있었기에, 바바가 가족 전체의 생계를 책임진 일은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었다.
1925년 3월 메헤라바드에서는 대나무 매트로 만든 소박한 힌두 사원 두 곳이 세워졌다. 하나는 하리잔 같은 하층 카스트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층 카스트 브라만을 위한 것이었다. 비슈와나트라는 인물이 상층 카스트 사제로 임명되었다. 단순한 그 사원들 벽에는 구루들의 사진과 가네쉬, 다타트레야, 하누만 같은 힌두 신들의 그림이 걸렸다. 구루 사진에는 바바잔, 사이 바바, 우파스니 마하라지, 메헤르 바바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랑가온 아이들은 하리잔 사원에서 예배하고 바잔을 불렀다. 힌두 축제 때에는 두 사원을 장식하고 성일을 성대한 의식과 경건함으로 기념했다.
1925년 3월 21일 토요일은 잠쉐드-에-나브로즈, 곧 태양이 춘분점에 드는 페르시아 신년이었다. 많은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메헤라바드에 모여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그날 메헤르 자선 진료소와 병원이 문을 연 것이었다. 이 시설은 만달리가 1923년에 수리하고 1924년 가멜라 요가 시기에 다시 손본 메스 쿼터스(훗날 다람살라로 알려짐)에 자리했다.
스승의 요청에 따라 루스톰과 그의 아버지가 장식된 열쇠로 문을 열며 진료소와 병원 개원식을 치렀다. 모인 마을 주민들에게는 종교, 카스트, 신조를 막론하고 병든 사람은 모두 무료 치료를 받는다고 공지되었다. 입원이 필요한 이들은 메헤라바드에 머물게 하고, 음식과 의복까지 모두 제공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