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기부금 일부는 스승의 프라사드 명목으로 만달리 몇몇 가정을 재정적으로 돕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페르시아를 위한 금액은 구자라티 주간지 카이저이힌드 편집자에게 맡겨져 신탁으로 보관되었다.
며칠 뒤 바바는 무기한 인도 전역을 도는 대장정을 떠나기로 했고, 그중 일부 구간은 걸어서 가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이례적인 말을 했다. "나는 사두 5000명의 다르샨을 받고 싶다. 사두를 보는 곳마다 그들의 다르샨을 받을 것이다."
이어 다울랏마이와 메헤라에게 지시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쿠쉬루 쿼터스에서 루스톰과 프레이니와 함께 지내라. 이후 영구 거처가 마련되면 내가 부르겠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흐메드나가르로 옮겼고, 나자는 아버지 마사지와 이모 다울라 마시와 함께 푸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오빠 펜두는 1년이 넘도록 구자라트 여정 중반부터 계속 퀘타에 있었고, 바바는 그를 만달리에 다시 부르지 않았다.
바바는 바지프다르에게 봄베이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했다. 최근 페르시아에서 돌아온 베흐람지와 구스타지, 베일리, 파드리에게는 침구, 옷, 신발 등 여정 필수품을 사 오라고 지시했는데, 여행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들이 메고 가야 할 짐은 무거워졌다. 파드리는 달갑지 않은 관리자 역할을 맡아, 여행 중 모든 준비를 챙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여정 일지도 기록했다. 1924년 8월 1일 금요일, 그들은 여행을 시작해 푸나로 향했다.
푸나에서 잠시 쉰 뒤 라이추르로 가기로 하고 8월 2일 정오 무렵 출발했다. 발라 탐바트, 가니, 잘바이, 마사지, 람주, 루스톰, 사다시브, 비슈누가 푸나역 승강장에서 그들을 배웅했다. 객실 안에는 음식을 구걸하던 사두 두 명이 있었다. 열차가 푸나를 벗어나자마자 바바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바바는 사두들에게 음식을 주고 닥시나를 건넨 뒤 그들의 발에 절했다.
잠시 후 바바는 파드리에게 열차가 언제 라이추르에 도착하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도착한다는 말을 듣자, 바바는 그 시간이 불편하다며 뜻밖에도 일정을 연장해 마드라스까지 가자고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