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헤르 바바는 평생 여성 그룹을 남성 만달리와 늘 분리해 두었다. 여성들을 돌볼 수 있는 이는 구스타지뿐이었고, 그마저도 특정한 일 외에는 여성들을 찾아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여성들에게도 하느님 이름인 예즈단을 반복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집안일도 맡겨졌다. 필라마이는 자주 여성들을 보러 왔고, 바바도 한 번은 여성들을 데리고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봄베이로 떠나기 전날 저녁, 바바는 남자들을 분수대에 몸을 숙이게 한 뒤 머리에 물을 부어 모두 목욕시켰다. 다음 날 아침인 7월 21일, 바바는 일부 만달리와 서둘러 떠나며 나머지는 짐을 가지고 봄베이로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1924년 7월 25일 금요일 봄베이에 돌아온 뒤, 그들은 이라니 맨션의 카이쿠쉬루 마사 아파트에 머물렀다. 수나마시와 특히 코르셰드는 바바가 돌아온 것을 기뻐했다. 바바가 떠나 있던 기간은 그들에게 말했던 12년이 아니라 한 달 반뿐이었다. 7월 말이 되자 가족이 있는 만달리는 각자 집으로 떠났고, 스승 곁에는 남자 여섯 명만 남았다.
어느 날 이라니 맨션에서 메헤라와 코르셰드는 두드 팍과 푸리, 즉 작고 둥근 튀김 푸리를 곁들이는 달고 걸쭉한 우유 디저트를 만들기로 했다. 우유가 걸쭉해지지 않자 메헤라는 밀가루를 넣었다.
그 음식을 바바에게 내놓자 바바가 물었다. "이게 뭐냐? 누가 만들었느냐?"
수나마시는 메헤라와 코르셰드가 만든 두드 팍 푸리라고 답했다.
바바는 둘을 불러 물었다. "너희가 살면서 두드 팍 푸리를 본 적이 있느냐? 너희 아버지가 이런 걸 먹어 본 적이 있느냐? 이게 두드 팍이냐, 환자 죽이냐? 내가 아파 보이느냐?"
하지만 다음 날 바바는 감자 패티를 만들라고 하며 자신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는 부엌에서 직접 감자 요리를 만들었고, 메헤라에게 채소 별미인 파트렐 만드는 법도 가르쳤다.
그리고 뜨거운 스토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스토브에서 불이 타듯, 너희 마음에도 사랑의 불이 타야 한다!"
이 시기에 다울랏마이는 스승에게 거액을 기부했다. 메헤르 바바는 그중 일부를 하즈랏 바바잔과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이름으로 교육·사회사업에 쓰도록 따로 두고, 또 일부는 페르시아의 가난한 조로아스터교도들에게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데 쓰라고 지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