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미 사치다난다라는 이름의 잘 알려진 인도 요기 한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쉰네 살로 라마나 마하르시와 리시케시의 성자 시바난다의 제자였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요가 센터를 세웠다. 이 무렵 해리 켄모어가 에루치에게 전화해, 사치다난다가 제자 무리와 함께 마하라슈트라를 여행하게 되어 메헤르 바바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9월 13일 사치다난다의 비서가 봄베이에서 아디에게 전화했을 때, 아디는 바바가 엄격한 은둔 중이라 지금은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고 알렸다. 대신 바바의 허락을 받아, 아디는 그들의 기차가 몇 시간 정차할 예정인 만마드 철도 분기점까지 차를 몰고 가 사치다난다와 그 일행에게 바바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곳은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약 100마일 떨어져 있었다.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1968년 9월 16일, 돈은 자신의 차로 아디를 만마드까지 데려갔고, 그곳에서 그들은 스와미 사치다난다와 그의 추종자 약 스물세 명을 만났다. 그중 일부는 서양인이었다. 아디는 그들에게 바바에 관한 문헌을 나누어 주고 질문에 답했다. 그 일행 중 한 사람은 메헤르 바바가 요가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했다. 아디는 이렇게 답했다. "바바는 요가를 포함한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바바는 무엇 하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크게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요가의 참된 목적은 신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네가 가고(you go)' '바바가 오게 하는(Baba comes)' 데 있습니다."
사치다난다는 바바가 언제 그들을 만나 주실지 물었고, 아디는 "지금은 아닙니다. 아마 나중일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만남이 끝난 뒤 아디는 바바에게 사치다난다가 진실하고 성의 있어 보였다고 보고했다. 바바는 그 보고를 듣고 기뻐했지만, 사치다난다를 다르샨에 부르지는 않았다.1
1968년 9월 30일 바바는 말했다. "오늘 나는 씨를 뿌렸다. 우리는 1969년 1월 10일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
이제 바바의 은둔 기간이 끝나자, 사랑자들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렀고, 다르샨을 청하는 편지들이 전 세계 사랑자들로부터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그리움을 알고 있던 바바는 만달리에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냐? 나 역시 그들이 나를 보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사랑자들과 나 모두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각주
- 1.이후 1969년 8월, 사치다난다는 미국의 우드스탁 음악 축제에서 개회사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