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바바는 윌리엄 리딩에게, 원래 계획했던 네팔 여행은 하지 말고 호주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리딩은 그대로 했지만, 푸나로 돌아가는 버스길은 그에게 눈물겨운 이별의 길이었다. 리딩의 말로는 이랬다. "나는 내 진짜 집을 떠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1968년 8월 12일 무렵 아흐메드나가르를 떠났고, 며칠 뒤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 리딩은 시드니에 있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디를 통해 바바에게 계속 쪽지를 보냈다.
빌 리딩은 바바가 두 팔에 세상을 안고 있는 또 다른 그림도 보냈고, 바바는 아디를 통해 이렇게 답을 전했다. "바바가 그것을 좋아하셨지만, 첫 번째 그림만큼은 아니었다 ..."
칸푸르의 라지 쿠마르 샤르마도 이때 바바를 만나려 했고, 8월 11일 직접 메헤라자드로 갔지만 입장이 거절되어 돌아가도록 설득받았다.
푸나 센터의 몇몇 일꾼들 사이에는 심한 불화가 있었고, 아디는 1968년 9월 1일 푸나에서 열린 그들의 모임에 참석해 화해를 돕고자 했다. 그가 다음 날 바바에게 보고하자, 바바는 라마크리슈난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내 현현의 때가 매우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와 모두가 서로를 용서하고, 지난 모든 차이를 사랑으로 잊어, 아바타 메헤르 바바 푸나 센터가 서로 양보하고 받아들이는 정신으로 한 팀이 되어 일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또 내가 육체로 태어났고 내가 아바타임을 자각하게 된 이 도시의 이 센터가 가장 앞서 서기를 바란다.
그날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
그는 하피즈의 한 연을 인용하며 말했다. "하피즈의 말은 그 시가 아름다운 만큼이나 뜻이 깊다. 머리카락 수만큼이나 많은 수천 가지 미묘하고 세밀한 요점이 있다. 머리를 민 사람은 그 길의 영성을 알지 못한다."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때때로 바바가 사랑자들에게 자신과 만달리를 위한 음식을 마련하는 비용을 대도록 허락하곤 했다. 봄베이의 사랑자 아디 가스왈라는 바바에게 보낼 음식을 위해 100루피짜리 수표나 우편환을 아디 시니어에게 보냈지만, 그 돈은 어쩐 일인지 전달 도중 분실되었다.
가스왈라는 몹시 괴로워했지만, 바바는 그 마음을 고맙게 여겼고, 9월 2일 가스왈라에게 사랑과 축복을 보내며 "사랑으로 준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라는 전보를 쳤다.
12일 사로쉬와 빌루, 아디, 루스톰 카카가 테이프레코더를 가지고 메헤라자드에 왔다. 바바가 가즈와니가 녹음한 자이푸리 카왈을 들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속도가 제대로 맞지 않아 테이프를 멈추었다. 아디는 다음 날 돈과 함께 메헤라자드로 다시 왔다. 그들은 쿠쉬루 쿼터즈에서 돈의 거처 문제를 두고 서로 이견이 있었고, 바바는 그들끼리 해결하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