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엄청난 힘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발에서 머리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의 홍수 속에서 "바바, 바바, 바바!"를 되풀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분의 이름은, 내가 합장한 채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나를 알아차릴 때까지, 내 입술 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가 되었다.
바바의 눈은 아득히 먼 거리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분이 내 모든 생애를 가로질러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분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렇게 사랑에 찬, 말로 다할 수 없는 친절과 연민을 본 적도 없고, 다시 보게 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분의 눈은 문자 그대로 가장 달콤하고 사랑 가득한 친절과 연민의 바다였다.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유일무이하게 뜻깊고 숭고한 순간이었다.
바바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 바로 그 순간, 그는 손을 느리고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뻗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양 볼에서 시작해 턱 아래로 내려오면서 엄지와 검지가 턱에서 한 치쯤 아래에서 만나고, 그 움직임은 끝까지 이어졌다. 이 한 번의 동작, 이 한 번의 쓰다듬음만으로도 나는 사랑하는 님과 함께 모든 시간을 건널 수 있다.
나는 이것을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그 움직임은 지금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든, 또 얼마나 자주 그분을 잊든, 그 단 한 번의 움직임은 나를 다시 그분께로 이끌기에 충분했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4일에는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온 애인자들이 아직 다르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바바가 오후 3시 40분에 다시 단상에 나왔다. 그때 델리, 자발푸르, 빌라스푸르, 라이푸르, 숄라푸르, 고테가온 및 그 밖의 먼 곳에서 온 헌신자들이 다르샨의 기회를 얻었다.
여섯 살가량 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다르샨을 받으러 왔을 때 감동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가 바바의 발에 머리를 숙이고 있을 때, 그 곁에 있던 어린아이가 힘차게 "아바타 메헤르 바바 키 자이!" 하고 외쳤다.
바바는 한 시간 동안 다르샨을 준 뒤, 자신의 자이를 크게 외치는 환호 속에서 자리를 떠났다.
1965년 5월 5일 수요일 아침 7시 10분, 바바는 구루프라사드의 옆방으로 들어갔다. 넘어져 대퇴골이 부러진 안드라의 바바 애인자 자간나트가 병원에서 곧장 들것에 실려 와 바바의 발 앞에 내려졌다.
바바는 그에게 "걱정하지 마라. 다 잘될 것이다."라고 몸짓했다.
자간나트는 눈물을 흘리며 바바의 다르샨을 받게 해 달라고 청했지만, 다리의 통증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바바는 오른발을 들어 자간나트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자간나트는 너무 기뻐서 자신의 불편함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