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 주니어는 1965년 1월 15일 런던으로 돌아갔지만, 프레이니와 다라, 쉬린은 3월 1일까지 인도에 머물렀고 몇 차례 더 메헤라자드를 방문할 수 있었다.
1964년부터 아마르 싱 사이갈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 전인도 라디오에서 힌디어 강연을 했다. 그의 강연은 델리, 보팔, 하이데라바드, 파트나 같은 방송국들에서 전파를 탔다. 바우는 사이갈이 할 이 연설문들을 써서 메헤라자드에서 그에게 우편으로 보내곤 했다. 하지만 몇 가지 논란 때문에 인도 정부는 살아 있는 성자나 구루에 관한 내용의 방송을 금지했다. 그래서 바우는 정직, 성실, 형제애, 사랑 같은 일반적인 주제로 연설문을 쓰면서 그 안에 메헤르 바바의 말씀을 곳곳에 엮어 넣었다. 바바와 메헤라자드의 모든 사람은 라디오로 그 강연을 들었고, 사이갈이 "...그리고 아바타 메헤르 바바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라고 할 때마다 모두 가슴이 설레었다.
사이갈은 1965년 1월 8일 오후 1시 30분에 바바를 만나러 메헤라자드에 왔고, 그날 저녁에는 아흐메드나가르 센터에서 강연했다. 그 다음 날 저녁 9시에는 도시의 간디 마이단(광장)에서 엄청난 군중을 상대로 연설했다.
아디 시니어는 군투르의 N. V. 라마나이아와 푸나의 라마크리슈난, 바브사르를 태우고 자신의 차로 사이갈을 메헤라자드까지 데려왔다. 라마나이아는 1959년 1월 구루프라사드에서 처음 바바의 다르샨을 했고, 그 뒤로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정기적으로 바바를 찾아왔다. 그는 개설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군투르 센터의 활동을 넓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12월에 푸나로 가서 푸나 센터 운영에 관해 라마크리슈난의 조언을 구하고 자료도 모았다. 그때 그는 라마크리슈난에게 밀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에 바바의 축복을 받아 군투르 센터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신 라마나이아는 바바가 그를 직접 메헤라자드로 부른다는 전보를 받았다.
바바는 그 사진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내가 내 사진을 직접 축복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당신과 함께 군투르로 돌아갈 것이며, 내 계획대로 내 일을 직접 할 것입니다."
이 사진은 그해 바바의 생일에 그 센터에 모셔졌다.
호샹 바루차가 이끄는 나브사리의 바바 애인자 10명이 1965년 1월 10일 일요일 오전 11시에 메헤라자드에서 바바를 만났다. 루스톰과 소랍, 셰루도 그날 찾아온 방문객들이었다. 발 나투도 도착했고, 그는 열흘 동안 메헤라자드에 머물도록 허락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