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바바는 이타르시 일대를 돌아다니며 성자들, 그리고 아마 몇몇 마스트들을 접촉했다. 그의 단독 방랑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이 내적 작업 때문이었고, 자신의 동선을 비밀로 두고 싶어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마 이때가 메헤르 바바가 성인이 된 이후 만달리 없이 홀로 이동한 유일한 시기였을 것이다.
일주일가량 모습을 감춘 뒤 바바는 1924년 3월 말 메헤라바드로 돌아와 만달리를 다시 곁으로 불렀다. 카스바 페트 만달리인 아르준, 초우다리, 콘디람, 비슈누 등도 푸나에서 불려와 메헤라바드에 머물렀다.
아바타의 내적 작업은 우주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므로, 여행 계획 변경을 포함해 그의 특정 행동 하나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바타의 모든 행위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결과를 낳는다. 메헤르 바바가 어떤 한 사람에게 말할 때에도, 옆에서 듣는 다른 사람이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끼는 일이 있었다. 그의 행동에 담긴 보이지 않는 힘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다.
페르시아 여정과 그 과정의 잦은 계획 변경도, 당시 바바가 페르시아 사람들과 그 나라를 두고 진행한 내적 작업과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바는 당시 만달리에게 그런 뜻을 암시했다.) 메헤르 바바의 현존은 실제로 그곳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의 씨앗을 심었다. 바바가 페르시아를 다녀간 뒤 나라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이 일어났다. 1년 반 뒤 레자 칸이 샤(왕)로 즉위했고, 그의 집권은 한동안 국가에 큰 이익을 가져왔다. 또한 바바의 여정 이후 종교적 적대와 소수 집단(조로아스터교도 등)에 대한 박해가 사라졌고, 나라는 점차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메헤라바드의 건물 일부가 폐허 상태였기에 1924년 4월 동안 바바는 만달리에게 보수 작업을 맡겼고, 어떤 경우에는 철거 후 평탄화 작업까지 시켰다. 이 작업에는 흙과 돌을 나르는 둥근 철 팬인 가멜라를 사용했으며, 그래서 이 노동은 농담처럼 "가멜라 요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노동 기간의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됐고, 모두는 오전 7시까지 각자 종교 방식으로 기도해야 했다. 오전 7시부터 8시까지는 우유를 넣지 않은 차와 기장 바크리로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