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카비르는 무슬림과 힌두교도 모두에게 존경받았다. 하지만 카비르가 죽자 힌두와 무슬림 추종자들은 장례 방식으로 다투었다. (무슬림은 매장을 하고 힌두교도는 화장을 한다.) 널리 알려진 전설에 따르면 두 집단이 관 주변에서 싸우다 마침내 관을 열었을 때, 시신은 사라지고 꽃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카비르를 위한 무덤이 나란히 두 곳 세워졌다. 힌두교도가 예배하는 사마디와, 무슬림이 참배하는 다르가였다. 양쪽은 각자 자기 쪽이 진짜 무덤이라고 믿는다. 바바는 두 곳 모두에 경의를 표했다.
카비르 성지를 찾은 뒤 바바는 마가르의 가난한 사람 약 50명에게 식사를 베풀었고, 덕분에 곡물 자루 부담도 줄었다. 페르시아 여정을 위해 인도에서 가져온 남은 식량은 모두 빈민에게 나눠주었고, 커다란 빈 항아리들은 역장에게 주었다.
마가르에 머무는 동안 방랑 사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바바가 개입해 다툼을 멈추게 했다. 그는 그들에게, 참으로 사두라면 또 덧없는 세상을 버린 사람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설명했다. 얼마 뒤 바바와 남은 네 명의 만달리(아디, 구스타지, 마사지, 바지프다르)는 통가를 타고 칸푸르로 가서 다람살라에 머물렀다. 그들은 갠지스강에서 목욕하고, 강둑의 빈민 몇 명에게도 추가로 음식을 나눠주었다.
칸푸르에서 기차를 타며 바바는 바지프다르는 봄베이로, 마사지는 푸나로, 아디와 구스타지는 아흐메드나가르로 가라고 지시했다. 또 바바는 아디와 구스타지에게 사코리에서 반경 5~6마일 안에 만달리와 함께 머물 장소를 정하라고 했다. 네 사람은 각자 목적지로 떠났고, 바바는 이타르시역에서 홀로 내렸다.
몹시 지쳐 있던 바바는 플랫폼에 발을 딛자마자 침구를 베고 누워 쉬었다. 멀리서 이를 보던 검표원이 수상히 여겨 "저 사람 잡아라! 무임승차다!"라고 소리쳤다.
그는 위압적인 태도로 바바에게 다가왔고, 바바는 표를 꺼내 "여기 제 표입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 남자는 바바 얼굴의 광채를 보고 놀랐다. 그는 바바에게 절한 뒤 그를 그냥 두고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