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한 오만한 아랍인이 정중히 옮겨 달라 말하지 않고 너버스의 침구 보따리를 발로 차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바바는 너버스가 그 사람에게 맞서려는 것을 즉시 막았다. 또 다른 때에는 한 아랍인이 동료 무슬림이 서쪽을 향해 나마즈를 하지 않는다며 욕했지만, 다음 날 아침 그 같은 사람이 관례인 손발 씻기조차 하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나마즈를 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반다르 아바스로 가는 도중 바바는 뜻밖에도 거기서 멈춰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는 문제를 꺼냈다. 남자들이 즉시 난색을 보이자 바바는 그들의 열의 부족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바바는 모두가 바이둘과 베흐람지와 함께 하선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반다르 아바스에 도착해 해안으로 옮겨 타려는 순간 파드리의 고열이 다시 심해져, 결국 바이둘과 베흐람지만 내렸다. 배는 약 두 시간 정박했고 그 사이 파드리 상태는 조금 나아졌다. 기선 출항 15분 전, 바바는 일행을 해안으로 데려갈 나룻배를 따로 마련했다. 하지만 다시 파드리의 열이 급격히 올라, 최종적으로 인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파드리는 너버스와 함께 카라치에 남아, 여행이 가능할 만큼 회복될 때까지 너버스가 돌보기로 했다.
네팔의 구르카 병사 몇 명이 배에 올랐다. 그들은 친절했고 바바의 용모에 감탄했다. 그들이 가볍게 네팔 방문을 권하자 바바는 동의해 카트만두로 가기로 했다.
화물선은 링게, 헨잠 섬, 무스카트를 지나 1924년 3월 7일 카라치에 도착했다. 바지프다르는 너버스와 파드리를 필라마이 집까지 동행했다. 바바가 기차로 즉시 네팔로 가기로 했기에, 마사지는 짐을 역으로 옮길 소달구지를 구하러 갔다. 대신 통가를 구해 짐을 역으로 옮겼고, 바바와 남자들은 대합실에서 쉬었다. 베일리는 아마 그곳에서 바바를 만나, 푸나로 돌아가 추가 지시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바지프다르가 밤 10시에 돌아왔고 일행은 곧 잠들었지만, 각자는 바바 곁 경비를 한 시간씩 서고 짐 도난도 막아야 했다. 일행은 여정 내내 곡물과 쌀 자루를 들고 다녔고, 식량 관리 책임은 마사지와 바지프다르에게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