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고, 페르시아를 보게 된다는 기대에 들뜬 모습이었다. 메모와 굴마이를 비롯한 여성들, 그리고 카스바 페트 만달리도 배웅하러 나왔다. 함께 가지 못하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바바는 한 사람씩 다정하게 껴안아 주었다. 어떤 이들은 바바가 자기 마음까지 가져가는 듯 느껴, 그가 손을 흔들어 작별할 때 눈물을 흘렸다. 그 사이 가니, 람주, 루스톰, 바르솝은 집에서 바바의 귀환을 기다리기로 되어 있었다. 바바의 지시대로 다울랏마이와 메헤라도 푸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람주가 동행하지 않게 되면서 아디가 여행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배에서 자리를 잡은 뒤 마사지는 남자들 식사를 준비하고 바바를 위해 채소 요리 한 가지를 따로 만들었다. 식사는 감자 요리와 빵, 차로 이루어진 소박한 것이었다. 베흐람지는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았고 배의 계속된 흔들림으로 상태가 더 나빠졌다. 아디도 뱃멀미로 심한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바바는 아디와 베흐람지를 돌보며 어떻게든 조금씩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들에게는 힘겨운 여정이었다.
배가 카라치에 잠시 정박했을 때 필라마이와 다른 신도들이 꽃과 음식을 들고 와서, 바바를 깊은 경의로 맞이했다. 베흐람지와 아디는 여전히 컨디션이 나빴고 계속 토했다.
이후 배 안에서는 무슬림 두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1 논쟁은 다툼으로 번졌고, 양쪽은 서로의 종교 지도자들을 격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맞선 두 그룹 사이에는 처남 관계의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시아파, 다른 한 사람은 수니파였다. 시아파 처남은 바바에게 강하게 끌려 논쟁 도중 바바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떤 종교를 믿으십니까?"
바바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나에게는 모든 종교가 하나입니다."
스승과 더 이야기를 나눈 뒤 그 시아파 남자는, 자기 종파가 구루-제자 관계를 인정했다면 분명 바바를 스승으로 모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처남 둘의 말다툼은 더욱 격해져, 원래 함께 메카 순례를 시작하기로 했던 바그다드에서 갈라서자고 맹세하기에 이르렀다.
배가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바다가 잔잔했으나, 바레인 항을 떠난 뒤에는 몸서리칠 만큼 차가운 폭풍이 몰아쳤다. 부셰르 항에 닿을 즈음, 그때까지는 비교적 괜찮던 바바도 메스꺼움을 겪기 시작했다.
각주
- 1.모든 무슬림은 오직 하나의 신(알라)만이 존재하며 무함마드가 그의 예언자라고 믿는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서기 632년에 사망했을 때, 이맘(영적 지도자)으로 봉사할 명확한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의 추종자 대부분은 장인 아부 바크르를 이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수는 무함마드가 자신의 딸 파티마의 남편인 알리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확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부 바크르를 지지하는 전자의 집단은 스스로를 수니파라 불렀다. 오늘날 그들은 세계 8억 무슬림의 약 90%를 차지한다. 소수파인 후자는 알리와 파티마의 후손들로부터 지도력이 이어질 것이라 믿는 여러 분파로 나뉘었으며, 이들은 시아파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