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초연한 상태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예였다.
바우는 자정까지 당직을 섰고, 그 뒤로는 비슈누(그가 있을 때), 펜두, 라노가 아침 6시까지 몇 시간씩 나누어 당직을 섰다. 한번은 펜두가 당직 중 전갈에 쏘였지만, 바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펜두는 소리 없이 몸부림쳤고, 자기 당번이 끝난 뒤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바바는 보통 아주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썼지만, 이 시기에는 그의 무기력이 너무 심해져 아무리 큰 재앙 같은 일이 닥쳐도 그를 움직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 기간에 바바는 물 한 잔도, 용변을 보기 위한 변기도 직접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드려야 했다. 어느 날 밤 바우가 그에게 셔벗 한 잔을 건넸다. 바바는 그것을 자신이 소변 볼 때 쓰는 잔에 따라 붓고는 바우를 바라보았다. 바우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는데, 바바가 그것을 자기가 마시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단물을 마셨고, 바바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그러고 나서 바우는 잔을 씻어 다시 바바에게 소변용으로 돌려주었다. 바바는 그저 조각상처럼 앉아 있었고, 바우는 그에게 용변을 보라고 거듭 일깨워 주어야 했다. 마침내 그는 그렇게 했다.
그 무렵 바우는 마치 자기 머리 위에서 폭풍우가 터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바는 바우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며 그가 가까이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밤이면 바우가 당직을 섰고, 낮에는 방에 틀어박혀 글을 썼다. 그는 그때 힌디어 가잘을 쓰고 있었는데, 나중에 《메헤르 기트 수다》[메헤르의 포도주 노래]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러나 바바는 그의 노력에 완전히 무심했다. 바우는 바바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의 생이 끝나 가고 있는 듯이 느꼈다. 모든 만달리도 비슷하게 느꼈다.
바바는 모든 사람에게 무심해짐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자신의 무심함에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그가 더 수동적일수록 그들은 그에게 더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무심한 태도 때문에 만달리는 그를 조금이라도 성가시게 할 원인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단호하고 조심스럽게 그의 지시를 따랐다.
몇 주 뒤인 1960년 11월, 에루치의 형제 메헤르완이 메헤라자드에 왔을 때 그 역시 바바의 상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바바가 그처럼 완전히 자기 내면 속으로 물러나 있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자 쪽에] 베란다가 없었다. 바바의 의자를 바깥에 놓고 만달리가 그 둘레에 앉아 있었지만, 누구도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