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설명도 없이, 모두 미친 듯이 서둘러 준비했다. 짐을 전부 꾸린 뒤 그날 오후 모두 증기선 SS 비타에 올랐다. 이로써 카라치에 두 달 머문다는 계획과 달리, 홀트 호 체류는 겨우 일주일 만에 갑자기 끝났다.
카라치에 있는 동안 스승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고, 필라마이가 찾아오는 것조차 금했다. 바바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던 그녀는 당연히 낙담하고 불안해했다. 필라마이는 바바를 보고 싶은 깊은 그리움에 시달렸다. 출발 직전 마지막 날, 바바는 그녀의 집에 들러 자비로운 미소로 그녀의 마음을 달래고 안심시켰다. 이런 이별의 시간은 이미 상심한 이들의 그리움을 더 깊게 하려는 뜻이었다.
베일리는 바바와 남자들을 위해 상갑판을 예약해 두었다. 배에 오른 뒤 바바는 남자들에게 낮 동안 쌀을 부지런히 고르라고 지시했다. 밤에는 각자가 한 시간씩 야간 당번을 섰다. 거센 바람이 몰아쳐 상갑판은 몹시 추웠고, 근육은 아프고 굳어 갔다.
람주의 집안은 쿠치 부족의 후손이었다. 배가 쿠치-만드비에 닻을 내렸을 때, 람주는 처음으로 조상들의 땅을 보았다. 가니는 장난스럽게 바바를 부추겨 람주에게 정통 쿠치식으로 등에 천을 두르고, 배에 타는 쿠치 사람들과 그들의 모국어로 말해 보라고 했다. 약 800명의 승객이 배에 올랐고, 그 소란 속에서 남자들은 상갑판에서 람주가 쿠치 사람들에게 차례로 다가가 말을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람주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만달리와 바바는 그 우스운 장면을 마음껏 즐겼다.
11월 23일 오후 12시 30분 배는 드와르카를 지났고, 오후 4시 30분 포르반다르에 닿았다. 베일리의 지인이던 칸다왈라라는 파르시도 배에 타고 있었는데, 만달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그들은 아는 만큼 답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칸다왈라가 여러 파르시 신문에 왜곡되고 오해를 부르는 기사를 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메헤르 바바가 제자들과 대화할 때 스승이 그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바바는 만달리가 나중에 따를 지침을 적고 있었고, 서신 작성에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구술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