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여행
1923년· 바바 29세페이지 469 / 5,444
바바는 돈을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자 맡은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둘과 파드리는 곧 찻집에 취직해 월 20루피를 받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낮 동안 계속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11월 20일 바바는 몇몇 만달리와 클리프턴 해변에 갔다가, 뜨거운 햇볕 아래 홀트 호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그가 극심한 더위 속을 돌아다닌 것은, 아직 일자리를 못 구한 사람들을 함께 헤아린 행동으로 보였다.
다음 날 가니가 솔직하게 푸나로 돌아가도 되겠느냐고 청하자, 바바는 "원하면 언제든 돌아오십시오" 하며 허락해 주었다.
가니는 페르시아행 계획이 계속 불확실한 데 지치고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바바는 카라치에서 어떤 추종자도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최근 카라치로 이주한 사로시의 형 딘쇼가 와서 신도가 아님에도 스승과 두 시간 동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1
한편 나발 탈라티는 봄베이에서 바바와 남자들의 여권 발급 가능 여부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가 바바와 만달리를 대신해 페르시아 영사관에서 여권 서명을 받으려 하자, 영사가 무심히 말했다. "메헤르 바바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직접 와서 내 앞에서 서류에 서명해야 여권을 승인할 수 있습니다. 메헤르 바바는 직접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 전 그분이 직접 나를 찾아와 여권을 다른 사람 편에 보내 서명을 받겠다고 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으니 말입니다."
이 기이한 일은 바바가 카라치에 있던 1923년 11월 17일에 벌어졌다. 만달리는 바지프다르의 편지로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스승은 한 달 반째 봄베이를 떠나 있었고, 페르시아 영사관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람주를 제외한 만달리 전원이 카라치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바바는 람주에게도 취직할 때까지 매일 방갈로 바닥을 쓸라고 명했다. 람주는 아침에 그 일을 마친 뒤에는 밖으로 나가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스승이 속으로 다른 계획을 품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베일리와 은밀히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11월 22일 아침 바바가 만달리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 즉시 푸나로 떠나야 합니다."
각주
- 1.딘쇼는 고허와 케이티의 어머니의 자매인 수나와 결혼한 사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