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의사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프라샨트는 밤 10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바바는 에루치의 이마에 입맞추고 그를 병원으로 보내며, 프라샨트의 시신에도 똑같이 하라고 말했다. 바바의 지시대로 메헤르다스는 병원에서 프라샨트를 간호했고, 그가 임종하는 순간에도 잘 시중들었다.
아들의 죽음은 쿠마르에게 아무런 흔들림도 주지 않았고, 그는 의연함을 지킨 채 바바의 뜻에 완전히 맡겼다. 그의 아내 수바드라는 데라둔에서 불려와 15일에 구루프라사드에 도착했다. 가이마이와 에루치는 그 소식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녀는 자기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바바와 함께 있습니다," 에루치가 말했다.
"안에, 바바와 함께 있다는 말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바바와 함께요," 에루치가 다시 말했고, 그때 바바가 방으로 들어왔다.
바바는 그녀를 위로하고 며칠 동안 구루프라사드에 머물도록 허락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녀를 쿠마르와 함께 돌려보냈다.
바바는 "그들 같은 사랑하는 이들이 기꺼이 내 고통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훌라후프 열풍이 인도에까지 번졌고, 구루프라사드에도 하나가 들어왔다.
쿠마르와 그의 아내가 29일에 떠나기 전, 바바는 한 자리에서 쿠마르에게 "자, 일어나서 내 앞에서 훌라후프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시오"라고 말했다.
쿠마르는 즉시 일어나 고리가 계속 돌도록 엉덩이를 힘차게 움직였다. 이것이 바로 바바가 슬픈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같은 시기에 푸카르의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바바는 푸카르를 한 달 동안 하미르푸르에 보냈고, 그는 7월 말에 구루프라사드로 돌아왔다. 푸카르 역시 아들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았고, 바바는 그의 의연함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자신이 바라는 사랑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푸카르가 구루프라사드에 머무는 동안 바바는 매일 알루미늄 대야(손을 씻기 위해 바바 곁에 두고 있던 것)로 그의 큰 배를 세차게 두드리며 그에게 "특별한 프라사드"를 넉넉히 주었다.
나브사리의 호샹 바루차 박사는 그 여름 바바의 다르샨을 위해 푸나에 여러 차례 왔는데, 마지막 방문은 1959년 6월 7일이었다. 바바는 그에게 하루 이틀 더 머물라고 했고, 9일에는 처음엔 단순해 보이는 명령을 내렸다.
바바는 그에게 "8월 말까지 나브사리를 떠나지 마십시오"라고 지시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바루차는 이에 동의했다.
몇 해 전 호샹의 누이 테미는 잘 코와스지라는 남자와 결혼해 봄베이로 이사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가 자신과 세상을 버릴까 두려워, 아내가 영적 수행에 몰두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었고, 테미는 집을 나와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말다툼을 후회한 남편은 테미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호샹에게 알리기 위해 전보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