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그렇게 하면, 내 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여도, 당신들이 내 명령을 하나도 어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토론도, 변명도, 설명도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100퍼센트의 순종과, 질문을 받았을 때 하는 솔직하고 간단한 대답뿐입니다.
지난 세 달 동안 나는 당신들이 행복하고 명랑함을 느끼도록 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40일 동안 완전히 순종함으로써 내게 협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내 앞에는 이루어야 할 엄청난 일이 놓여 있고, 내 육신은 몹시 혹사되어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나는 40일 동안 완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모임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바바의 다만(daaman)을 굳게 붙잡고 그에게 100퍼센트 순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에루치와 다른 만달리는 구루프라사드에서 서신 업무를 계속했다. 막 직장에서 해고된 엘차 미스트리에게 에루치는 1959년 6월 23일 이렇게 격려의 말을 썼다: "바바께서는 당신이 모든 일을 용감하고 명랑하게 맞서기를 바라십니다. 바바께서는, 그분의 신성한 의지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으며,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국에는 언제나 그 사람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당신이 알기를 바라십니다." (결국 엘차는 몇 주 만에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28일에 바바는 바바 하우스를 두 차례 방문했는데, 한 번은 여성들과 함께였고, 두 번째는 만달리와 함께였다. 다음 날 그는 여성들을 바바잔의 묘로 보내며, 바바잔의 사마디 위에 꽃 잘리(시트)를 올려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날은 바바가 아무 도움 없이 구루프라사드 정문까지의 절반을 걸었기 때문에 만달리에게 "좋은" 날이었다.
1959년 7월 6일, 딕쉬트 박사는 바바의 위장관과 비뇨기계에 대해 바륨 식사 검사를 실시했으나, 비뇨기계에는 폐색이나 병변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7월 8일 수요일은 바바의 56일 작업이 끝나는 날이었지만, 바바는 그것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해 침묵의 날 준수에 대해서도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고, 각자가 원하면 침묵을 지키고 원치 않으면 지키지 않도록 전적으로 개인의 뜻에 맡겼다. 그러나 그날, 7월 10일에 바바는 100명의 가난한 아이들이 모여 있던 옛 푸나 센터에 가서, 그들의 발을 씻기고 각자에게 사랑의 선물로 10루피씩 주었다.
한편 벨가움 근처의 광산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던 쿠마르의 장남 프라샨트(19세)가 7월 초에 구루프라사드로 불려왔다.
바바는 프라샨트를 포옹한 뒤, "열이 있군"이라고 말했다.
바바는 구나타이와 날리니 가데카르를 불러, 프라샨트를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고, 의대에 다니고 있던 날리니에게 그를 치료하라고 했다. 그들은 그대로 했지만, 그의 병은 악화되었고 그는 제한기르 너싱 홈으로 옮겨졌다. 진찰 결과, 그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라샨트를 치료한 의사는 고허를 통해 바바를 알게 된 서른아홉 살의 케키 바이람 그란트였다. 1959년 7월 10일 금요일 저녁, 바바는 그란트 박사에게 그날 밤 프라샨트를 살리기만 하면 바바가 프라샨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