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2월 3일 일요일, 펜두는 시두와 알로바와 함께 구급차로 푸나에 이송되었다. 그는 바바를 뵙기 위해 실버 오크스로 옮겨졌고, 그곳을 방문 중이던 봄베이와 푸나의 가까운 러버 몇 사람을 보자 펜두는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바바는 휠체어를 타고 나와 펜두를 보았고, 농담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우리 둘 다 일어나 함께 걷게 될 것입니다," 하고 바바는 그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말없이 견디십니다," 하고 펜두가 말했다.
바바가 대답했다. "당신은 괜찮아져서 다시 걷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고관절 역시 다시는 정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군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뒤, 펜두는 아흐메드나가르로 차에 실려 가서 회복을 위해 악바르 프레스의 사타 가족과 함께 지냈다. 양다리의 석고 깁스는 풀렸지만, 펜두 역시 아직 일어설 수는 없었다. 알로바가 그를 돌보도록 정해졌고, 치료 조치도 마련되었다. 한 달 뒤 펜두는 비슈누와 마찬가지로 메헤라바드로 보내졌다. 이로써 사타라에서의 체류는 끝났다. 바바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1957년 2월 12일 화요일 오전 9시 30분, 바바는 돈과 메헤르지와 함께 메헤르지의 차를 타고 푸나에서 메헤라자드로 향했다. 여성들은 아디의 차를 타고 뒤따랐다. 그들은 1시쯤 도착했다. 바이둘과 바기라트는 며칠 전인 7일에 이미 짐을 가져다 놓았다. 에루치와 바우, 사바크는 11일 오후 9시에 기차로 도착했고, 구스타지와 카이코바드, 잘바이는 다음 날 도착했다. 부상 때문에 바바는 앞으로 몇 달 동안 메헤라자드의 1층 침실을 쓰기로 했다.
바바의 1년 은둔은 2월 15일 금요일에 끝날 예정이었다. 이미 발표한 대로 바바는 가난한 사람 700명에게 천과 과자를 나누어 주고자 했다. 파드리와 카카, 차간, 아디는 한 달 전에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그날 메헤라자드로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바는 그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24시간 단식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인근 여러 마을에서 가난한 사람 700명을 데려왔다. 천과 라두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했고, 그것들은 더미와 바구니에 나누어 정리되었다. 바바의 뜻에 따라 푸카르가 돕기 위해 하미르푸르에서 왔고, 아흐메드나가르의 러버들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행사는 오전 9시에 시작되었다. 카카의 방에는 입구와 출구로 쓸 수 있는 문이 둘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행사 장소로 정해졌다. 앞문은 출구, 뒷문은 입구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입구로 한 사람씩 재빨리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입구와 출구 바깥에는 방수포로 임시 지붕을 쳐 두었다. 바바는 앞쪽 출입문의 오른편 구석에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었다. 두 야드 길이로 자른 흰 천을 쌓아 바바 곁에 배포용으로 준비해 두었다. 그 천은 남자 셔츠를 맞출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천더미 옆에는 라두 바구니들이 놓여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