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그에 대한 마음가짐이 가능성에는 그만큼 깨어 있게 하고 불가능성에는 그만큼 귀먹게 할 정도로 완전해야 한다. 시인 [하피즈]가 그린 바와 같다:
나는 뗏목에 묶인 채 바다에 던져졌다.
그러고 나서 옷자락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다.1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도 사랑과 사랑에 대한 순종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그 요구 수준은 설명되지 않으며, 설명될 수도 없다. 사실 이 사하바스의 세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랑과 순종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분이 붙잡도록 돕는 데 있다.
여러분은 이 사하바스에 대해 마음속에 너무도 분명한 그림을 지녀야 하며, 그 결과 내 선언이나 메시지나 담화 같은 것들은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 이 자리는 과거나 미래의 약속을 이행하거나, 만들거나, 깨는 자리가 아니다. 여러분은, 단상 위에 내가 있고 여러분이 그 앞에 앉아 있는 모습, 여기 있는 여러분 대부분이 익숙한 바로 그 모습을 마음에서 지워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나와 함께, 내 가까이에, 내 앞에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여러분이 내 개인적 현존의 공기를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와 함께, 서로를 위해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처럼 친밀하게 함께해야 한다.
어떤 행사나 모임, 시간표, 프로그램, 의제, 또는 딱딱하게 정해진 계획 따위도 기대하지 말라.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머무는 동안, 놀고 앉고 걷고 농담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뿐이다. 나는 여러분이 내가 보통 살아가는 그 하루하루의 삶을 나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
여러분에게 기대되는 것은 읽거나 공부하거나 명상하거나 기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가족과 친구들 한가운데 집에 있을 때처럼, 자연스럽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나와 함께 편안히 지내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사교 생활에서 흔히 취하는 겉치레 예절은 제쳐 두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를 지켜보고 또 나에게 지켜보이는 가운데, 여러분은 아무리 많은 가르침으로도 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저절로 배우고 또 버리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이 사하바스 프로그램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 사이의 하나됨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분에게 내가 가장 가까이 함께하는 동행을 주기 위해서다.
둘째: 여러분이 사랑과 순종을 이해하도록 돕고, 모든 생명 뒤에 있는 무한한 존재의 감로가 지닌 이 두 측면을 여러분이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다.
각주
- 1.다르미야네 까흐레 다리야, 타흐타 반담 카르다이; 바드 미 구이 카이, 다만 테르 마쿤 호시야르 바시. [바다의 격노 한가운데 나를 널빤지에 묶어 놓고는, 그러고서 옷자락을 적시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