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머스트 여행이 있은 지 며칠 뒤, 바바는 에루치, 바이둘, 쿠마르, 바우와 함께 두 특정한 머스트와 일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이슬람푸르와 콜하푸르를 다시 찾았다. 이슬람푸르에서 접촉한 이는 1946년 12월 마하발레슈와르 아쉬람에 데려온 적이 있는 제5계의 머스트 돈디 부아였다. 돈디 부아는 키가 큰 인물로, 이목구비가 빛났으며 어떤 날씨에도 완전히 벌거벗고 지냈는데도 몹시 건장하고 건강했다. 누가 담요나 셔츠를 주면 그는 그 선물을 물리치며 "나는 행복을 견딜 수 없다! 나는 안락을 견딜 수 없다!" 하고 말했다.
한번은 바바와 일행이 새벽 1시나 2시경 돈디 부아를 접촉하러 갔는데, 그는 사원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우상 앞쪽 근처에 소변과 대변을 보아 놓은 상태였다. 머스트와 접촉할 때는 만달리 한 사람이 대화로 그의 주의를 돌려, 바바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했는데, 대개 겉으로는 몸을 주무르거나 발을 눌러 주는 식이었다.
그래서 에루치가 돈디 부아에게 "지금 당신이 있는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하고 물었다.
"오, 이곳은 주님의 큰 사원이야." 하고 그 머스트가 대답했다. "이곳은 성별된 곳이야."
"그렇다면 누가 여기서 대소변을 본 것입니까?" 하고 에루치가 물었다.
돈디 부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결국 사원이란 무엇인가?"
에루치가 대답했다. "사원은 하나님을 모셔 둔 신성한 곳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은 거기서 그분을 경배하러 옵니다."
"아니, 아니!" 그 머스트는 또렷한 어조로 설명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셔!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에 편재하시기에, 인간은 그분께 손을 댈 수 없어.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기들이 다룰 수 없는 그 하나님에 대해 상상의 형상을 하나 만들어 사원이라는 곳에 모셔 두는 거야."
그 머스트는 결론지어 말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사원은 주님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주님을 가두는 감옥이야! 사람들이 그분을 거기에 가두는 거야!"
그 머스트는 버려진 비디를 주워 모아 피우곤 했다. 누가 새 비디나 담배를 권해도 그는 받지 않고 "안락은 나와 맞지 않아. 그런 것과 접촉하는 건 견딜 수 없어!" 하고 말했다.
때로는 그 머스트가 먼지 속을 뒹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바바는 그것이 머스트들이 지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통 때문이라고 말했다.
"너희는 그런 사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하고 그는 어느 날 여성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며, 사랑하는 이를 태워 버려서 머스트는 그저 살아 있는 불이 되고 만다!"
바바는 돈디 부아와 접촉한 것을 몹시 기뻐했고, 이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그와 일했다. 바바는 그를 자주 언급하며 사타라에 머물게 하고 싶어 했지만, 그 머스트를 오게 하도록 설득할 수는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