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삶이 그 궁극의 죽음에 굴복하게 하는 것은 모든 행위를 끝내게 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완전히 끝나면, 제한된 자아의 삶은 저절로 자신을 무한한 자아의 존재로 체험합니다. 존재가 실현되면 의식의 진화와 내적 성숙은 완결되고, 환영은 사라지며, 윤회의 법칙은 더 이상 속박하지 않습니다.
단지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그만두는 것만으로는 결코 행위를 끝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또 하나의 행위, 곧 비활동이라는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일 뿐입니다. 행위에서 도망치는 것은 행위를 뿌리째 없애는 처방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제한된 자아가 바로 그 도피 행위에 더 얽매일 여지를 주어, 더 많은 행위를 만들어 냅니다.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는 모두 엉킨 삶의 실에 생긴 매듭과 같습니다. 행위의 매듭을 풀려는 노력이 끈질길수록, 그 매듭은 더 단단해지고 얽힘은 더 심해집니다.
독이 독의 작용을 상쇄하듯, 행위를 무효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다른 행위뿐입니다. 깊숙이 박힌 가시는 다른 가시나, 바늘처럼 그것과 비슷한 날카로운 물체를 능숙하고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뽑아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행위도 다른 행위에 의해 완전히 뿌리 뽑히는데, 그것이 "자아"가 아닌 어떤 다른 작동 주체에 의해 행해질 때 그렇습니다.
카르마 요가, 드냔 요가, 라자 요가, 박티 요가는 진리의 길 위에서 두드러진 이정표 구실을 하며, 구도자를 영원한 존재라는 목표로 이끕니다. 그러나 행위로 양분을 얻는 삶의 힘이 수행자를 너무도 강하게 붙잡고 있어서, 이러한 고무적인 이정표들의 도움을 받아도 그는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되지 못합니다. "자아"가 행위에 묶여 있는 한, 수행자나 심지어 진리를 향한 길 위의 순례자까지도 자기기만으로 길을 그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사두와 구도자, 현자와 성자, 무니와 수도승, 타파스비와 산야시, 요기와 수피와 탈리브는 행위의 미로에서 빠져나오고 삶을 극복하여 영원한 존재를 실현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며 평생 분투해 왔습니다.1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아"와 더 많이 씨름할수록 자아가 더 단단히 삶에 붙잡히기 때문입니다. 그 붙잡힘은 고행과 참회, 은둔과 순례, 명상과 집중, 단언하는 발언과 침묵의 관조, 강렬한 활동과 비활동, 침묵과 장황한 말, 자파[반복]와 타파스[고행], 그리고 모든 종류의 요가와 첼라[제자도]로 강화된 행위를 통해 더욱 심해집니다.
각주
- 1.탈리브는 아라비아의 한 구도자 집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