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스승들은 마음 자체를 통해, 곧 명상과 집중을 통해, 마음을 파괴하는 길을 고안했습니다. 마음이 집중되면 그 이후의 작용은 약해지고, 인상은 저절로 지워집니다. 인상은 벌레와 같아서 스스로 소진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명상과 집중의 과정은 마음이 인상을 실행해 [소진해] 버리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노나쉬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좌절을 느끼면 더욱 필사적이 됩니다. 명상하려고 앉는 순간, 때로는 전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생각들이 떠오르고, 결국 다음 세 가지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첫째, 집중할 수 없어 싫증이 납니다. 둘째, 졸리거나 몽롱해집니다. 셋째, 더 나쁜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와 시도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감한 마음으로 끈기 있게 계속하면, 아주 드문 경우에는 마음이 일시적으로 고요해집니다.
그러면 그 결과 둘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곧 황홀경이나 사마디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황홀경[할]과 사마디는 마노나쉬가 아닙니다. 사마디는 어떤 경우에는 직업이 되기도 하고, 황홀경은 마약처럼 되어 사람이 거기에 중독됩니다. 사람은 황홀경을 즐기지만,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사마디에 들어갔다가 정상 의식으로 내려올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사마디에 들어갈 때 품고 있던 바로 그 생각인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디에 들어가기 전에 돈을 생각했다면, 거기서 나올 때도 똑같이 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부 스승들은 최선의 길은 자기를 잊고 마음이 새로운 인상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자기를 잊느냐입니다! 답은 헌신[박티 요가]을 통해서입니다. 사람이 백 퍼센트 헌신하면 자기를 잊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실제로는 불가능한데, 그런 헌신과 자기 망각이 계속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피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님의 현존을 원한다면,
사랑하는 님을 기억하는 데서 떠나지 마라.
당신은 단 한순간도 이 헌신, 이 자기 망각 없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헌신의 길, 곧 박티 마르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과 함께하는 한순간은 진실한 경건 백 년보다 낫다."1
일부 스승들은 마음을 죽이려면 그 마음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에고로 하여금 "나는 몸이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하여금 "나는 몸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 나는 저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하게 하십시오. 이 또한 거의 불가능한데, 마음은 거짓 인상을 지니고 있어서 이 거짓된 마음에게 스스로 거짓이라고 느끼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은 위선적 행동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은 자신이 "아무개 씨"라는 것을 압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면, 바로 그 순간 마음은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 결과 이것은 가슴과 감정과 사랑을 지치게 합니다. 마음은 "나는 하나님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행동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말하므로 행동 없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나는 하나님이다. 누구에게 기도한단 말인가?"라고 말하므로 헌신 속에서 자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각주
- 1.다른 때 바바가 이 인용구를 인용했을 때는, "경건" 대신 "기도"를 써서 "백 년의 기도"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