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가 집주인이라고 여겼던, 자신들에게 머무르라고 허락한 사람과 경찰과 함께 온 다른 사람은 소유권을 두고 법정에서 서로 소송 중이었다.
아디는 자기 행동을 간단히 설명하고, 경찰과 함께 온 사람에게 며칠만 머물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디가 간청하자 그 사람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카라반 전체가 카이 바그에 머물렀지만, 바바는 여자들이 건물들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동반자들은 바깥 마이단(탁 트인 공터)에 머물렀고, 여자들은 카라반 안에서 잠을 잤으며 낮에는 가까운 단상을 사용했다. 그곳이 더러웠기 때문에 여자들이 말끔히 청소했다.
자운푸르에 이르기까지 바바와 동반자들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나흘 동안 38마일을 걸었다. 피할 곳 하나 없이 그런 날씨에 밖에서 잠을 잤고, 음식도 넉넉하지 않았다. 매번 멈추는 곳마다 그들은 동물들을 돌봐야 했다. 물을 먹이고, 꼴을 가져오고, 먹이를 주고, 알맞은 곳에 매어 두어야 했다. 또 수레의 사소한 수리를 하고, 음식을 구걸하고, 요리하고, 냄비를 닦고, 물을 길어오고, 빨래를 해야 했다. 이런 일들과 그 밖의 자잘한 일들이 그들의 피로를 더했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 때문에 그들은 충분히 쉴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12월 16일 바바가 한 다음 말은 동반자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낙타와 낙타 수레, 소 두 마리와 송아지들은 가능한 한 가장 좋은 값에 팔도록 하십시오. 돈과 에루치와 펜두는 기차역에 가서 당나귀 두 마리와 흰말, 황소들과 황소 수레를 하리드와르까지 화물열차로 보내는 일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바바가 소들을 팔기로 한 것은 그것들을 반값에 얻기도 했고, 어린 송아지들 때문에 동반자들의 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낙타 역시 터벅터벅 느리게 걸었고, 낙타 수레는 자주 고장 났다. 당나귀들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여자들이 등에 짐을 실으면 그것들이 선뜻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흰말은 보시로 받은 것이어서 팔 수 없었다.
자운푸르에 머무는 동안 가니는 매일 다른 동반자와 짝을 이루어 구걸하러 나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디는 시내에서 야채와 차파티 또는 푸리, 그리고 생토마토와 무(이 고장으로 유명한 것들)를 가져와 점심으로 삼기로 했다. 카카는 쌀과 달로 저녁을 지어야 했다.
1949년 12월 18일 일요일 아침, 바바는 동반자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맞닥뜨린 사실과 사정을 고려하여, 나는 계획 하나를 최종 확정하려 합니다. 일단 채택되면 끝없는 끝까지 결코 바꾸거나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