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인 11월 25일, 카레 박사의 집은 약 10마일 떨어져 있었으므로, 바바는 구스타지, 아디, 바바다스와 함께 이번에는 카레 가족에게서 빅샤를 받기 위해 다시 나트 박사의 집으로 구걸하러 나섰다. 이번에도 바바는 경건한 침묵 속에서 빅샤를 받았다. 바바의 허락을 받아, 나트 박사는 그 자리를 지역 사진사가 촬영하도록 마련해 두었다. 가야 프라사드를 빼고는, 그의 아내 자나키도 아들도, 그 아들의 가족도 모두 전에 바바를 본 적이 없었다. "두 가족은 얼마나 복을 받았던가. 메헤르 프라부께서 처음으로 그들의 문턱에서 구걸의 삶에 들어서셨고, 그들의 손에서 첫 보시를 받으셨다. 그들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주님은 언젠가 그들로 하여금 영원의 노래를 듣게 할 선물을 내리셨다."
26일부터 동반자들은 고대 도시의 거리로 나가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차림은 바바와 비슷했다. 맨발에 흰 카프니를 입고, 놋쇠 구걸 그릇과 주황색 천 자루를 들고, 녹색 터번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둘씩 짝을 지어 집집마다 다니며, 빅샤를 받을 때까지 걸어 다녔다. 베나레스는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 순례지인 만큼 사두나 고행자나 거지가 모자라지 않았지만, 동반자들의 특이한 차림새 때문에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종교와 종파, 카스트, 혹은 구루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혹은 자기 신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주었고, 어떤 이들은 주지 않았다.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는 카카와 닐루가 조롱을 받았다. "너희 둘은 펀자브 레슬러처럼 생겼구나! 왜 구걸을 하느냐? 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느냐?" 하지만 동반자들이 그런 굴욕적인 일을 겪어야 했음에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하는 구걸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나트 박사는 사르나트에 바바와 동반자들이 머물 숙소를 마련했고, 돈은 그곳의 시설을 감독하기 위해 먼저 떠났다. 남자들과 여자들을 위한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아디는 나트 박사와 함께 사르나트에 동행했다.
바바와 동반자들이 베나레스와 사르나트에서 북쪽의 하르드와르까지 걸어갈 여정과 가져갈 물자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때, 식비로 쓸 돈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