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바바를 우파스니의 총애받는 제자로 여겼고, 우파스니의 영적 후계자로 공경했다. 그러나 우파스니의 브라만 제자들 중 일부는 바바를 그저 "참회 중인 사람"으로만 보았고(그들은 그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신도들이 바바를 극진히 예우하자 질투심을 드러냈다. 그들은 "조로아스터교인이 어떻게 우리 구루의 으뜸 제자가 될 수 있나?" 하고 의아해했다. 우파스니가 바바를 마하데브(위대한 신, 보통 시바를 가리킴)라고 부를 때면 브라만들은 특히 격분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바의 사랑 넘치는 성품에 마음을 열었고, 그가 머물던 말기에는 기회만 되면 그의 곁에 둘러앉곤 했다. 그들은 바바에게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고, 이 시기 바바의 식욕은 매우 왕성했다.
마하라지가 택한 영적 어머니 두르가바이는 메헤르 바바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우파스니가 자신과 바바 사이의 참된 관계를 밝혀 준 유일한 제자도 두르가바이였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바바의 조언을 구했다. 바바가 평소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아 그녀가 차린 식사에 늦기라도 하면, 두르가바이는 그가 올 때까지 울었다. 한번은 바바가 푸나의 제자들인 구스타지, 베흐람지, 사다시브, 사이예드 사헵 등에게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 남자들 중 누구도 두르가바이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 어머니조차 그녀만큼은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할 수도 없다."
이 무렵 칸사헤브와 굴마이가 모은 자금으로 사코리에서는 휴게소와 아쉬람 구역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원도 증축되고 있었고, 아르티와 바잔을 위한 영구 차양도 세워지고 있었다. 석공 한 사람이 공사를 책임졌고, 우파스니의 남녀 제자들이 그의 지휘 아래에서 일했다. 두르가바이는 소달구지를 몰았고, 다른 여자들은 돌과 석회, 흙이 담긴 가멜라를 날랐다. 우파스니는 마감 작업에서 석공을 도왔고, 메헤르 바바도 함께 손을 보탰다. 굴마이는 두르가바이의 일을 거들었다.
저녁 아르티가 끝나면 바바를 포함한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남녀 제자들이 밤늦도록 바잔을 불렀다. 바바는 자신의 방에서 굴마이에게 몇몇 영가를 가르쳤고, 굴마이는 그것을 적어 두었다. 그 노래 가운데 두 곡은 "사랑의 길은 매우 험하다"와 "오 주여, 왜 피리를 부셨나이까?"였다.1
굴마이는 바바와 함께 밤 아홉 시쯤까지 그 노래들을 연습한 뒤, 두르가바이와 함께 물러나 쉬었다.
각주
- 1."프렘나가르 키 라흐케 카틴 하이(Premnagarki rahke kathin hai)"; "카레 하레 투 무를리 바자블리(Kare Hare tu Murli vajavl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