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를 걸친 젊은 남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고, 그의 눈에서는 신성한 포도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젊은이는 멍한 듯 보였다. 그는 바바잔이 입맞춤을 했던 푸나 출신의 조로아스터교 청년이었다.
나라얀은 즉시 군중을 해산시키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부드럽게 젊은이의 손을 잡고, 스승은 그를 자신의 자리로 이끌었다. 자신의 어깨에서 화환을 벗어 젊은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런 다음 젊은이에게 신선한 망고 주스를 마시게 했다. 주스를 다 마신 후, 젊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라얀에게 절하고 떠났다. 나라얀은 젊은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고, 지극히 기뻐하는 듯했다.
그날 남은 시간에는 더 이상 다르샨이 허락되지 않았고, 나라얀의 헌신자들은 자기네 스승의 자리에 앉았던 그 젊은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사드구루로서 나라얀 마하라지의 명성이 널리 퍼지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도와 축복을 받으러 찾아왔다. 한때 외딴 황무지에 불과했던 케드가온 땅에는 점차 나라얀의 추종자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마침내 나라얀을 위해 작지만 정교한 궁전이 지어졌고, 그는 그곳에 거처하며 홀에서 대중에게 다르샨을 베풀었다. 궁전 뒤편에는 그의 휴게실과 침실, 주방이 있었다. 나라얀은 궁전에서 정교하게 장식된 여러 옥좌에 앉아 다르샨을 열었다. 다타트레야의 형상이 새겨지고 은으로 도금된 옥좌 하나는 1926년에 캄프티의 한 헌신자가 바친 것이었다. 그 옥좌는 거의 10피트(약 3미터) 높이이며, 그 안에 아름답게 조각된 의자도 은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같은 해 나라얀은 우주적 작업을 하기 위해 은둔할 지하실을 궁전 옆에 짓게 했다.
나라얀 마하라지는 푸나와 봄베이, 그 밖의 인도 각지를 자주 여행했다. 1915년에 그는 자신의 일을 위해 북쪽 히말라야로 여행했는데, 그곳에서 네팔 왕이 그에게 많은 선물을 바쳤다고 전해진다. 1934년에 그는 마이소르 마하라자의 손님이 되었고, 이어 인도르로 가서 마하라자 자신의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이끌었다. 1936년 7월, 113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다시 히말라야에 간 그는 리시케시에서 바드리나트까지 걸었다. 그는 마투라와 하르드와르를 방문했고 베나레스로 가서, 갠지스 강에서 많은 헌신자들과 아이들을 목욕시켜 주었다.
나라얀의 수석 여성 제자인 안자니 바이 말페카르는 봄베이의 전직 기녀였으며, 많은 저명한 사회적, 정치적 인물들을 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