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2월부터 3월까지 이란은 눈이 오고 몹시 추운 시기이므로, 그 기간은 내가 그곳에서 하고자 하는 특정한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1944년 3월 중순에 이란으로 가서 4월 중순에 인도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나는 그룹의 여러 사람에게서, 1944년 1월 그룹 모임을 위해 휴가를 얻기 어렵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한 달 동안 내 곁에 있기 위해 필요하다면 직장[일자리]이나 심지어 학업까지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이 나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서 보여 준 봉사와 희생의 정신,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려는 준비를 나는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의 이유로 그들이 세속의 의무를 버리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점과 다른 중요한 요소들까지 고려하여, 나는 이제 이란에서 돌아온 뒤인 1944년 5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 그룹이 내 가까이에 있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모든 학생들과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이 마침 여름방학의 혜택을 누리게 되고, 그룹의 다른 이들도 필요한 휴가를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로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상황 때문에 생긴 이 연기를 제외하면, 그룹 모임을 위한 다른 모든 준비와 계획, 그리고 이전 회람장들에서 언급한 영적 체험의 성취를 위한 모든 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의심하는 자들, 조급한 자들, 실망한 자들은 물러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그들의 약점으로 보지 않을 것이며, 다만 정해진 영적 시기에 보조를 맞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이 연기된 기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서명하는 이들은, 이러한 연기가 그 기간에 요구될 희생을 그만큼 더 강렬하고도 가혹하게 만든다는 뜻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1944년 1월에 7일간 금식하라는 지시를 받은 이들은 이제 5월 8일부터 14일까지(양쪽 날짜 포함) 그렇게 해야 하며, 1944년 5월 15일에 나와 함께, 또 내 곁에서 금식을 풀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