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에게는 자신만의 일하는 방식이 있었다. 바바의 일꾼들은 시련과 시험 없이는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명상하고 집중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되풀이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불안정과 끊임없이 바뀌는 계획 한가운데서 초연함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렇게 해서 바바는 자기 사랑하는 이들에게 쉬운 명상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바바는 그들이 자신을 더욱더 기억하게 하려고 자신의 계획을 계속 바꾸고 미루곤 했다!
만달리 역시 끊임없이 시험을 받았고, 바바가 그들을 꾸짖음으로써 그들을 통해, 또 그들을 위해 일하는 독특한 방식에 참여해야 했다. 찬지는 종종 이것을 스스로 상기해야 했는데, 1943년 10월 30일자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울과 그 치유책. 바바에게 폐[곤란]를 최소화하고 피하면서 떨어져 있기. 다른 곳에서 우리 일을 하기. 질문, 토론, 설명. 모두 [바바와] 함께 앉아서.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와서 떨어질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찬지를 꾸짖는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하는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나면 그것을 알고,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개의치 말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쉽고 견딜 만한 시험을 참아 내는 것이라면, 거기에 무슨 공이 있겠는가? 스승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을 떠넘긴다. 그것은 겉보기에 그렇듯 불쾌함이 아니라 사랑의 표시다. 침묵 속에서 더 많이 고통받을수록, 스승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더 사랑받는 이가 된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정반대다. 그러나 그것도 목적이 있어서다. 그것을 참된 내면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몇 달 뒤 바바가 그를 다정하게 대했을 때, 찬지는 이렇게 기록했다(1944년 1월 30일):
바바가 모두를 붙드는 가장 큰 힘은 그의 사랑이다. 모두를 그에게 끌어당기는, 규정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어떤 것. 아무도 파악할 수 없는 그의 신비로운 일처리 방식에도 불구하고, 또 그의 여러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그 약속들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용기와 열의를 북돋우려고 주어진 것이었다), 또 그 자신이 일깨워 주고 심어 준 사랑에서 비롯된 이별의 극심한 고통과 삶의 다른 어려움들, 복잡한 문제들, 가정사나 사업 문제에서 견디기 힘든 상황들, 직업이나 생업이나 봉직[고용] 문제의 얽힘들, 혹은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삶의 다른 어떤 영역의 복잡한 문제들, 그리고 때로 삶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만들 정도의 실망과 낙담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똑같이 그에게 끌어당기는 그 미묘한 매력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은 사실 중의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