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가 떠난 직후 그 남자들은 가니를 붙잡고 말했다. "메헤르 바바가 누구인지 모르시오? 어떻게 그분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소? 그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오! 그분은 쿠툽이오! 완전한 스승 바바잔과 타주딘 바바와도 연결되어 계시오." 그들은 바바가 인정받는 영적 지위에 대해 설명했고, 각자 바바와 접하며 겪은 경험도 들려주었다. 가니는 사과했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후 가니는 바바를 만나기 위해 푸나를 자주 찾았고, 바바는 그를 바바잔이 앉는 자리 맞은편 차르 바우디의 이라니 식당으로 데려가곤 했다. 거기서 차를 마시며 바바는 여러 주제, 특히 정치 이야기를 꺼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고, 가니는 늘 인도 정치 상황을 길게 설명하곤 했다. 가니의 복잡한 설명은 보통 사람이라면 지치게 만들 만했지만, 바바는 그의 장황한 답을 끝까지 인내심 있게 들었다.
이 시기 가니는 바바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 문시지의 집에 밤늦게까지 머물렀지만, 아직 메헤르 바바를 자신의 영적 스승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바바의 친구들과 초기 제자들 가운데 가니는 가장 지적인 사람으로 여겨졌고, 머리가 크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 거대한 지성조차 결국 메헤르 바바의 발아래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은 가니의 메헤르 바바에 대한 믿음을 깊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20년 가니가 푸나에 와 있던 때, 바바는 공연을 보러 3~4일간 봄베이에 가기로 했다. 그는 가니를 초대하고, 베일리에게도 가니와 함께 가라고 했다. 처음에 가니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동행을 망설였지만, 바바가 하나하나 반박하자 곧 동의했다.
그때는 장마철(6~9월)이었고, 푸나는 나흘 내내 어둡고 흐린 날씨였다. 봄베이로 가는 길목의 칸달라에서는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행이 푸나에서 열차에 올랐을 때도 하늘은 여전히 잿빛으로 흐려 있었다. 탈레가온을 지날 무렵 바바가 가니에게 말했다. "우리는 봄베이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니는 신문에 정신이 팔린 채 약간 비웃듯 말했다. "무슨 말이야? 기차는 봄베이로 가고 있는데, 도착하지 못한다고 하면 피르(성인) 아니면 미치광이겠지! 그리고 나는 네가 피르가 아닌 걸 알아!"
바바가 답했다. "당신은 남의 말을 뭐든 비웃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내 말을 들으세요. 나는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봄베이에 도착하지 못할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리고 내 말이 사실임을 곧 알게 될 겁니다."
가니가 재미있다는 듯 답했다. "말해 봐, 우리 셋만 못 간다는 거야, 아니면 다른 승객들도 다 못 간다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