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를 찾는 일과 비슷하게, 바바는 잘바이에게 자신이 할 일을 위해 알맞은 소년들을 찾아 데려오는 임무를 맡겼다. 잘바이는 날마다 소년 한둘을 데려왔고, 바바는 대개 그들을 잠시 곁에 두었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잘바이가 데려온 소년들 가운데 바바는 네 명을 골라 오랫동안 곁에 두었다. 그들은 크리슈나 K. 나이르, 라주, 칼라파, 암두였다. 바바는 그들에게 머스트 아쉬람에서 할 일을 맡겼다.
또 다른 소년 벤코바 라오(18세)는 처음에 비라망갈라 센터 개장을 알리는 전단을 배포하는 일에 고용되었다. 그는 12월 의식이 끝난 뒤에야 바바를 만났고, 머스트 아쉬람에서 돕도록 지시받았다.
결국 메헤르 바바와 가장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은 열네 살의 크리슈나였다. 잘바이는 10월 19일경 크리슈나를 데려왔는데, 그 잘생긴 케랄라 소년을 허름한 식당에서 일하는 중에 발견했던 것이다.
그를 보자 바바는 "당신은 나와 과거의 인연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크리슈나는 바바를 개인적으로 시봉하도록 임명되었고, 그와 벤코바 라오는 방갈로르의 상주 인원이 되었다. 나머지 세 소년 라주, 칼라파, 암두는 나중에 메헤라바드에 머물도록 보내졌다.
힌두 축제 다세라는 해마다 마이소르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장엄한 행렬로 절정에 이르렀다. 1939년 10월 19일 목요일, 바바는 오후 3시에 엘리자베스의 차를 타고 여성 만달리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 잘바이와 에루치는 따로 차를 타고 갔고, 돈은 버스에 나머지 여성들을 태워 갔다. 그들은 오후 6시에 마이소르에 도착했고, 찬지와 펜두가 마중 나와 옐왈 방갈로로 안내했다. 그 방갈로는 찬지가 그 전주에 미리 임대해 둔 곳이었다. 바바와 남자들은 그 거대한 방갈로의 한쪽 동에서 잤고, 여자들은 같은 집의 다른 쪽 동에서 잤다. 구스타지와 파파 제사왈라, 그리고 그의 아들 메헤르완은 다음 날 기차로 도착했다.
바바는 여성들을 마이소르 동물원과 브린다반 정원, 그 밖의 여러 명소로 데려갔다. 차문디 언덕에서 바바는 7층 사원을 가리키며, 그 7개 층이 의식의 7경지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바바의 뜻에 따라 데완은 바바가 여성들과 그곳들을 방문하는 동안 그 장소들에 남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도록 조처했다. 미르자 경은 이런 일들에서 최대한 협조했고, 모든 면에서 바바의 뜻을 실행했다.
그러나 바바는 어느 곳을 방문하든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나들이를 즐길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메모가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메로그,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게 하고 싶지 않다면, 왜 굳이 우리를 데려오시는 겁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