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스니는 많은 추종자들과 함께 그 행사에 참석했고, 메르완지에게도 그 자리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이때 메르완지는 우파스니의 27세 제자 구스타드 누세르완지 한소티아를 처음 만났다. 대화 중 메르완지의 놀라운 통찰은 구스타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는 영적 문제에 대해 메르완지의 말을 더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메르완지는 그날 곧바로 봄베이를 떠났고, 구스타지는 크게 아쉬워했다.
베흐람지와의 동업이 무산된 뒤, 메르완지는 다시 아버지의 야자술 가게 일에 힘을 쏟으며 매일 두 시간씩 꾸준히 일했다. 평소처럼 저녁마다 바바잔을 찾아갔다. 낮에는 외진 곳을 찾아 몇 시간씩 돌에 이마를 찧는 가혹한 습관을 계속했고, 큰 스카프나 수건으로 그 상처를 가리고 다녔다.
어느 날 야자술 가게에서 메르완지는 바바잔에게 바치는 다음 가잘을 지었고, 이 시는 바바잔에게도 낭독되었다. 그 가잘은 힌디어와 우르두어로 쓰였으며 훗날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오 비러벳 스승이시여! 저는 당신께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제게 십만 번의 생이 있다 해도 —
그 모든 생을 당신의 발치에 바치겠습니다.
당신은 저를 하나됨의 영원한 대양에 잠기게 하셨고
저를 당신과 같은 대양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당신은 연인을 하나님으로 만드셨으니 —
저는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오 스승들의 황제시여! 오 자비의 대양이시여!
오 완전함의 화신이신 사드구루시여!
당신의 자비로운 눈길이 누구에게든 닿기만 하면 —
거지도 왕으로 바뀝니다!
신들, 여신들, 천사들, 천상의 존재들, 그리고 인간들 모두
당신 신성의 찬란함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오 세 세계의 깨달은 스승이시여!
제가 제 육신을 당신 발의 샌달로 바꾼다 해도,
당신이 메르완을 위해 하신 일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 당시 봄베이의 이라니 식당에서 일하던 베일리는 영국-인도 해군에 입대했다. "보급 담당" 임무로 그는 영국, 프랑스, 그리스, 이집트, 아라비아를 오갔다. 해외에 있는 동안에도 베일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메르완과의 우정을 이어 갔다. 그는 메르완지의 편지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씩 읽었고, 그 안에는 메르완의 시가 자주 들어 있었다.
베일리의 배가 봄베이에 정박할 때면, 메르완이 그를 만나러 기다리고 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베일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총 3년간 현장 복무를 하는 동안(바다 항해 1년 반, 아덴 육상 근무 1년 반), 나는 메르완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유지했다. 내 증기선이 봄베이 항에 닻을 내리는 순간이면 메르완은 일부러 배까지 나를 찾아오곤 했다. 메르완은 일간지에서 증기선의 입출항 소식을 챙겨 보다가, 내 배 시리아호 도착 소식이 뜨면 미리 부두에 나와 기다렸다. 때때로 잠쉐드와 함께 왔지만 대개는 혼자 왔다. 그는 배 위에서 나와 차도 마시고 아침과 점심도 함께했다. 저녁에는 상관에게 몇 시간 외출 허가를 받아, 둘이 바이쿨라에 있는 잠쉐드의 작은 방으로 가서 그를 데려오고, 잠시 함께 시간을 보낸 뒤 각자 각자의 목적지로 떠났다.
한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메르완의 편지에 답장을 늦게 했는지 아니면 그의 편지를 늦게 받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지연 때문에 메르완이 걱정이 되었는지, 내게 짤막한 엽서를 보내왔다. 내가 받은 그 엽서에는 두 줄짜리 운문만 적혀 있었다:
인테자리 세 딜 호타 하이 카바브, 베즈 피야레 베일리 잘디 쿠치 자와브. [기다리는 동안 내 가슴은 꼬챙이에 구워지고 있네, 사랑하는 베일리, 빨리 답장을 보내게.]
메르완은 단 두 줄에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담아냈다. 유머 감각과 사랑, 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빨리 답장을 달라는 요청까지. 나는 수년 동안 이 구절을 수백 번은 읽었을 것이다.
몇 년 뒤 베일리는 바다 생활에 지쳐 육상 근무를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한 달 휴가를 얻은 그는 푸나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