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완은 대부분의 주말에 베일리와 함께 봄베이의 잠쉐드를 방문했다. 토요일 오후 푸나에서 기차를 타고 저녁 7시에 봄베이에 도착하면 잠쉐드가 바이쿨라 역에서 마중 나왔다. "잠쉐드와 함께," 베일리는 회상했다. "우리는 그의 방에 도착해 여행의 피로를 잠시 풀고, 몸을 씻은 뒤 호텔[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때로는 연극을 보거나 무성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전차나 기차를 타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밤늦게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은 일요일[잠쉐드의 휴무일]이어서, 우리 셋은 그날 하루를 밤늦도록 마음껏 즐겼습니다. 그날 밤 야간 열차를 타고 돌아오면, 다음 날 이른 아침 집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메르완은 갑자기 구자라트의 중요한 조로아스터교 성지를 순례하고 싶다고 했다. 메르완은 형 잠쉐드, 그리고 베일리, 코두, 베흐람지, 라투스 네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메르완과 다섯 동행자는 먼저 우드와다에 있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배화 사원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푸나에서 출발했다. 힌두교인에게 베나레스가, 무슬림에게 메카가 있듯이, 우드와다는 인도 조로아스터교인에게 가장 신성한 순례지이다. 1,200여 년 전 페르시아에서 온 최초의 조로아스터교 이민자들이 바로 이 우드와다에 정착했다. 조로아스터 예언자는 수천 년 전 페르시아에서 성스러운 불을 일으키고, 모든 조로아스터교인이 따르는 불의 예배를 확립했다고 전해진다. 인도로 이주한 최초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이 성스러운 불을 가져와, 그것을 모시기 위해 우드와다에 사원을 세웠다. 그 불은 사원의 사제들이 지켰으며, 결코 꺼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1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메르완은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누구도 맥주와 토디(토디야자에서 나오는 값싼 발효 음료)를 제외한 어떤 술도 마셔서는 안 되었다. 음식은 채식만 해야 했으며, 고기와 닭고기와 생선은 금지되었다. 마지막으로 누구도 상스러운 말이나 욕설을 써서는 안 되었고, 어떤 "저급한 생각"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해야 했다. 그 시절에도 메르완의 친구들은 그를 깊이 존경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에게 순종하며 그가 말한 대로 정확히 따랐다. 게다가 메르완이 모두의 교통비와 경비를 미리 지불하며 여행의 책임을 졌기에(그들은 나중에 갚기로 했다), 그들은 그의 바람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고, 그 조건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일행은 우드와다에서 3일을 보냈고, 매일 아침 메르완이 젊은이들을 이끌고 배화 사원에 가서 기도했다. 그 후에는 야자나무 그늘 아래 앉거나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첫날 식사 시간에 친구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는데, 메르완은 그들의 경건한 순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바닥에 앉아 감자와 차파티만 먹었다. 다섯 친구 모두 메르완의 경건한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후는 꽤 무더웠고, 한번은 점심을 먹고 난 뒤, 일행은 방으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막 떠나려는데 메르완이 갑자기 깊은 열정을 담아 페르시아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에 모두의 마음이 사로잡혀 낮잠 생각은 깨끗이 잊었다. 메르완 목소리의 감미로움이 다른 방의 투숙객들까지 나오게 했다. 모두가 메르완의 노래를 너무도 좋아해서 한 곡 더, 또 한 곡 더 청했고, 그는 가잘을 연이어 불렀다. 널리 알려진 곡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지은 자작곡도 있었다.
한 노신사가 너무 감동받아 메르완의 등을 두드리며 그를 칭찬했다, "노래할 때 그대 얼굴에 빛나던 광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직접 지은 가잘들을 보니, 그대는 언젠가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질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각주
- 1.인도 전역의 배화 사원에 있는 불꽃은 모두 우드와다로 옮겨진 이 원래의 불꽃에서 나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