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잔은 두 여인을 향해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메르완... 메라 피아라 베타 (나의 사랑하는 아들)."
바바잔의 말은 메모를 몹시 짜증나게 했고, 메모는 골란둔을 돌아보며 말했다. "메로그를 자기 아들이라고 부르다니, 참 뻔뻔하기도 하지요. 어떻게 감히!"
바바잔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메르완... 그는 온 세상을 뒤흔들 것이다... 그는 세상을 깨울 것이다."
메모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바바잔은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곧 바바잔은 대화의 초점을 바꿔 할머니 골란둔이 페르시아에서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메모로서는 몹시 못마땅한 일이었지만, 목소리가 고운 골란둔과 바바잔은 결국 페르시아어로 함께 노래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바로 그달 7월 10일 메르완의 막내동생 아디가 태어났다. 어느 시점에 셰리아르지는 주둔지 지역의 아수르칸나로 가는 길에 또 하나의 찻집을 구입했다.1 새 카페 셰리아르 뒤편에는 가족이 지낼 공간이 없었기에, 식구가 늘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가까운 버틀러 모할라 816번지의 보플라 하우스로 이사했다.
메르완은 보플라 하우스 위층 다락에 딸린 작고 어두운 칸막이방을 자신의 방으로 삼았다. 그 조그마한 은신처는 초르 말, 곧 '도둑의 소굴'이라 불렸다. 정상 의식을 되찾아 가는 과정에서 그는 온종일 그곳의 완전한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지내곤 했다. 아주 드물게는 코두, 티란다즈, 카이쿠시루 이라니(별명 라투스, '뚱뚱한'이라는 뜻), 그리고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이주한 친구 베헤람 호샹 파레둔 이라니(별명 베흐람지, 훗날 부아사헵) 같은 옛 친구들과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메르완은 고기와 생선, 닭고기를 먹기 꺼려했고, 채식을 더 좋아했다. 그는 친구들과 자신과 가까워진 이들에게도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권하곤 했다. 이 시기에 그의 어머니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으면 그가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더 이상 채식 음식을 따로 해 주지 않고 차려진 음식을 먹도록 강요했다. 그의 식사는 위층으로 보내졌다. 메르완은 작은 글쓰기 탁자 앞에 앉아 먹는 척하다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비채식 음식을 서랍에 쏟아 넣었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면 그것을 종이에 싸서 집 뒤편 좁은 골목에 내다 버렸다.
각주
- 1.아수르칸나는 버틀러 모할라 옆 평행 도로에 자리한,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곡물 가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