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사람이 계획하고 하나님이 결정하시지. 하나님의 뜻이 항상 이기는 거야. 그렇게 되는 것이지. 불쾌해하거나 낙담할 필요 없어. 하나님만이 그분의 계획을 아시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일어난 일은 모두 최선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해. 그것이 우리의 의무야. 자, 가자. 아침부터 차를 못 마셨어. 머리가 무겁네. 차를 몹시 마시고 싶네."
이것이 메르완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마장 경험이었다.
1911년 12월, 메르완은 봄베이 대학교가 시행한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통과했다. 그 뒤 그는 대학 과정을 위해 푸나의 데칸 칼리지 문과 예과반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데칸 칼리지는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들 중에서도 수준 높은 곳으로 꼽혔다. 그곳에는 스포츠 시설이 훌륭한 보트 클럽이 있었고, 학생들은 지역의 여러 종교와 공동체 출신들이 어우러진 하나의 학생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이전에 했던 것처럼 메르완은 곧 가까운 친구들의 모임을 형성했고 다시 급우들과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다. 모두가 이 인상적인 젊은이의 타고난 리더십 자질에 감탄했다.
대학생으로서 메르완은 매우 총명했고 스포츠에도 자주 참여했으며, 크리켓이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었다. 그는 훌륭한 타자이자 뛰어난 위켓키퍼였다. 그는 경기 중 보여준 민첩함과 에너지뿐 아니라 스포츠맨십으로도 인정받았다. "메르완의 이름은 대학 크리켓 팀에서 아주 유명해졌다." 하고 베일리는 회상했다. "그가 없으면 경기가 매우 따분하고 생기 없어 보였다." 메르완은 대학 보트 클럽 회원이 되기도 했고,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저녁이면 물라-무타강에서 노를 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데칸 칼리지에 다니는 동안 메르완은 연극 극단을 꾸려, 사차피르 거리에 있는 이모 필라 마시와 이모부 루스톰 마사(마사지)의 집에서 연습했다. 이 극단은 지역 극장에서 두세 차례 공개 공연을 했고, 수익금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메르완과 친구들은 때때로 키르탄 공연에도 참석하곤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나 구루, 성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여 부르는 노래였다. 가드게 마하라지는 6경지의 힌두 성자였고, 젊은 시절에는 인도를 떠돌며 탁발로 살아갔다.1 한 번은 메르완이 푸나에서 그 위대한 성자의 키르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겸손한 성자는 누더기 차림이었지만, 가드게 마하라지에게서는 신성한 사랑이 뿜어져 나왔고, 참석한 모든 이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각주
- 1.가드게 마하라지(Gadge Maharaj, 1876–1956)는 1954년 판다르푸르에서 메헤르 바바와 함께 나병 환자를 씻겨 준 성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