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포르토피노
1932년· 바바 38세페이지 1,454 / 5,444
그 무렵 바바는 유난히 행복해 보였고, 일행에게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그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그들의 놀이친구이자 친구, 아이,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바바에게 나는 뭔가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민타는 이렇게 말했다. "바바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형제자매처럼 서로 경쟁하게 하셨던 것 같아요. 꽤 자주 그러셨어요."
민타는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 전에 바바와 몇 분이라도 단둘이 있으려고 늘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곤 했다. 고피들 가운데 가장 어렸던 민타는 이번 여행에서 원하는 것을 해 달라고 전보다 조금 더 조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밤에도 바바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경비를 서는 카카와 함께 바바의 방에 머물게 해 달라고 계속 졸랐다. 마침내 바바가 허락했다. 바바가 앉아 카카와 소통하는 동안 민타는 깨어 있으려 했지만, 바바의 침대에서 자꾸 꾸벅꾸벅 졸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바바는 그녀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특권을 받았다는 느낌에 들떠 떠났는데, 그것이 바로 그녀가 진짜 바라던 것이었다.
오드리 윌리엄스는 마가렛에게 무용을 배우던 재능 있는 열여덟 살 소녀였다. 바바는 오드리에게 이탈리아로 와서 자신의 곁에 머물라는 전보를 특별히 보냈다. 마가렛은 지난 5월 바바가 미국으로 떠날 무렵, 런던에서 사우샘프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바바에게 오드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때 바바는 마가렛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데려왔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 아이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꼭 만나야 합니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산타 마르게리타에서 바바와 함께한 인원 총수를 열둘로 맞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새로 합류했지만 오드리는 곧 신성한 사랑하는 님의 사랑의 궤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오드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메헤르 바바를 처음 뵈었을 때 참 다정한 분이라고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지요." "나중에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어요. 바바는 명령하시는 법이 없었지만, 그분 뜻대로 해야 할 것만 같았거든요. (매일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라고 하셨는데, 나는 저절로 그 말씀을 따르게 됐어요!)"
이번 여행에는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24시간 동안 은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바바는 성 프란치스코와 인연이 있는 아시시를 은둔 장소로 택했다.1 1932년 8월 1일, 바바는 허버트를 아시시로 보내 은둔할 동굴을 찾게 했다. 그동안 바바는 라팔로와 포르토피노를 비롯해 산타 마르게리타 인근의 여러 곳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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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1.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2~1226)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이탈리아에서 전쟁에 참전한 뒤 22세에 신앙의 전환점을 맞았다.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된 그는 신앙심이 매우 깊어졌고, 철저한 금욕 생활을 하게 되었다. 훗날 바바는 프란치스코가 완전한 스승이 되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