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불과 열 살인 메르완이 보여준 성품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메르완과 잠쉐드가 집에 돌아오자, 그 무슬림 소년은 어머니와 이웃 몇 사람을 데리고 와 쉬린마이를 찾았다. 누군가 쉬린마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자, 그녀는 곧장 거리로 뛰어나갔고 메르완도 뒤를 따랐다. 무슬림 소년의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사과를 요구했다. 누가 자기를 때렸느냐는 물음에 소년은 메르완을 가리켰다.
메르완은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이웃들과 행인들 앞에서 사과했다. 그러자 무슬림 소년과 그 어머니는 만족한 듯 자리를 떴다. 그 비난 앞에서도 메르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을 보면 그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는 사과를 하면서도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쉬린마이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메르완이 잠쉐드 대신 누명을 쓴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후 쉬린마이는 잠쉐드를 꾸짖으며 다시는 싸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셋째 남동생 베헤람은 메르완이 열네 살 되던 해인 1908년 6월 20일에 태어났다. 베헤람은 다정한 성품으로 자라 메르완을 닮았고, 형제 잘은 기질이 잠쉐드와 비슷했다. 잠쉐드와 메르완은 잘이 메모의 정보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가 주변에 있을 때는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1909년 1월 4일 월요일, 메르완은 푸나 최고의 중등학교로 꼽히던 남학생 로마 가톨릭계 학교, 성 빈센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1 그 학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운영했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카스트나 신앙에 관계없이 모두 입학할 수 있었다. 가톨릭 학교로서는 드물게 종교 교육이 필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규율은 엄격했고, 어떤 장난을 쳐도 벌로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성 빈센트 고등학교에서, 이제 열다섯 살이 된 메르완은 6학년에 올라 새로운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점차 학교를 좋아하게 되었고, 푸나 캠프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들과 급우들, 특히 기독교 소년들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검은 수단을 입고 붉은 수염을 기른 독일인 예수회 신부 빌헬름 빈트하우젠 교장은 이 소년의 성품에서 뭔가 범상치 않은 점을 알아차렸다. 빈트하우젠 신부는 메르완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고, 그것은 다른 몇몇 학생들의 질투를 자아냈다. 체육 코치 역시 메르완을 각별히 아껴 체육관에서 따로 개인 훈련까지 시켜 주었다. 메르완은 키가 크거나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민첩하고 달리기가 빨랐으며 반사신경이 유난히 뛰어났다.
각주
- 1.이 학교의 이름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한 프랑스의 성인 빈센트 드 폴을 따서 붙여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