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통도 우리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아플 때에도 조용히 말없이 견뎠다.
1903년 8월 31일, 아홉 살의 메르완은 푸나 캠프 정부 영어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이 학교에 5년 동안 다녔다. 그곳은 남학생만 다니는 학교였고, 메인 스트리트(지금의 푸나 드러그 스토어 근처)에 자리한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이었다.1 그 학교는 푸나와 봄베이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 학생들을 위해 영국인이 세운 오래된 학교였다. 이곳에서 메르완은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을 접하게 되었고, 많은 이들의 총아가 되었다. 그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품이었으며, 누구에게나 공감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 동료들은 메르완을 매우 사랑했고, 그들의 타고난 지도자로 여겼다. 워낙 인기가 많아서, 기회만 있으면 그와 함께 앉고 먹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가 워낙 인기가 많자 몇몇 어린 아이들이 질투심에서 메르완과 그의 친구들에게 맞서는 패거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메르완은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라고 믿었기에 그들의 적개심을 무시했고, 그들의 적대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메르완의 친구 베일리의 형, 호르마즈드였다. 호미라 불리던 그는 심술궂은 성미로, 일부러 메르완을 괴롭히곤 했다. 한번은 학교에서 필드하키를 하다가 호미의 팀이 메르완의 팀에게 지자, 화가 난 호미가 일부러 하키 스틱으로 메르완의 정강이를 내리쳤다. 다리가 끔찍이 아팠을 터였다. 다른 아이였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메르완은 그 타격을 불평 없이 받아냈을 뿐 아니라, 되받아치지도 않았다. 호미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겉으로는 메르완의 적이었지만, 속으로는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푸나 캠프 학교에서 메르완은 운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여러 경기에서 상을 받으면 그는 늘 친구들이나 팀원들과 그것을 함께 나누었다. 소년 시절의 메르완은 자기 절제가 몸에 밴 아이였다. 공부와 독서, 놀이마다 정해진 시간이 있었고, 좀처럼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나서, 고운 선율의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하곤 했다. 메르완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났다. 이웃들도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일부러 일찍 일어나곤 했다. 그가 노래하면 마치 시로 이루어진 강물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듯했다.
각주
- 1.이 학교는 후에 앵글로-우르두 고등학교의 일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