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훔쳐 온 먹을거리를 늘 놀이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메르완의 특별함에 대한 가족과 이웃들의 생각을 더욱 굳혀 주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어느 날 메르완이 근처 들판으로 가는 길에 거리를 걷고 있었다. 갑자기 커다란 물소 떼가 거리를 따라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쉬린은 아들이 짓밟혀 죽을 것만 같아 그에게 소리쳐 경고했다. 물소들은 곧장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떤 목격자들은 아이가 짓밟히기 직전이었는데 다음 순간 길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물소들은 그를 피해 양옆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들은 물소 한 마리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멈춰 아이 위로 몸을 드리운 채 돌진하던 무리로부터 그를 보호했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들은 한순간 메르완이 물소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무리가 지나가는 동안 그가 길 건너편에 무사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든 메르완의 기적적인 탈출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902년 9월 15일, 또 다른 아들이 태어났고 이름을 잘이라고 지었다.
셰리아르지와 쉬린마이(존경의 뜻으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아들 일곱과 딸 둘, 모두 아홉 자녀를 두게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중 세 명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쉬르만드는 생후 7개월에, 또 다른 아들 제항기르는 두 살에, 딸 프레니는 1905년경 일곱 살 때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1
1902년 9월 1일 월요일, 여덟 살이 된 메르완은 캠프(주둔지) 지역에 있는 사르다르 칸 다스투르 노쉬르완 조로아스터교 학교에 입학해 1년 동안 다녔다. 푸둠지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을 따로 가르쳤지만, 다스투르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메르완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여자아이들 앞에서 수줍음을 탔던 것이다. 학교 첫날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을 때 그는 오후에 다시 학교에 가기를 거부했다. 어머니가 거듭 설득했지만 그는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끝내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늦게 잠쉐드가 집에 돌아와 메모에게 메르완이 반에 여자아이들이 있어서 다스투르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고 알려 주었다. 쉬린마이가 메르완을 타일러 보았지만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각주
- 1.프레니가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저는 가야 해요… 아름다운 백마가 왔어요!" 메르완의 누이가 남긴 이 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베단타 학파에서는 이 시대의 아바타가 칼키(Kalki) — 백마의 아바타 — 로 알려질 것이라고 확언하기 때문이다.
